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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종찰을 가다] <1>부처의 세계

해인사 대장경판전 안쪽에서 대적광전을 바라보는 방향의 겹치는 문 모양

[삼보종찰을 가다] 부처의 세계 장선화 기자 india@sed.co.kr 해인사 대장경판전 안쪽에서 대적광전을 바라보는 방향의 겹치는 문 모양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불교에서 삼보, 즉 세가지 보배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 부처님 말씀, 부처가 되고자 하는 스님 이 세가지를 말한다. 부처님은 이미 열반하셨으니 부처 진신사리가 대신하고, 부처님 말씀은 무수한 경전에 기록되어 있고, 불도를 닦는 수행승들은 여전히 왕성하니 부처의 깨달음을 찾는 대중은 이 세 가지에 또는 그 중 한 가지 두 가지에 의지해 구도의 길을 떠나게 된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절도 많고, 불경을 보관한 절도 많고, 스님이 없는 절이 어디 있으랴. 그런 불보사찰 중의 으뜸이요, 법보사찰 중의 제일이요, 승보사찰 중의 최고라고 조계종단에서 공인받은 불·법·승 삼보의 종찰을 가보았다. 절에 가면 쉽게 마주치는 그림으로 ‘심우도(尋牛圖)’라는 것이 있다. ‘심우(尋牛)’는 ‘소를 찾는다’는 뜻이다. 건물벽을 빙 둘러가며 그려진 소가 등장하는 열 폭의 벽화라 ‘십우도’라 부르기도 한다. 불교의 진리세계에 다다르는 과정을 알기 쉽게 함축해 낸 작품으로 1100년대 중국 고승의 역작이다. 여기서 소는 사람의 마음을 비유하는 데, 많고 많은 동물 중에 왜 하필 소일까? 고집 센 사람을‘쇠 심줄 같다’고 하듯이, 또는 논밭을 가는 소가 제 맘에 차지 않으면 쟁기줄에 갈려 제 다리에서 피를 쏟을 지라도 농부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것처럼 소 다루기 만큼이나 자신의 마음인데도 부처의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기가 힘듦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다루기가 소에 버금가는 말이나 코끼리를 등장시키는 그림도 있긴 하나 우리들에게는 소가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소를 다루는 과정은 부처를 찾는 것인데 부처는 누구나 다 마음속에 가지고 있다 하므로 부처의 마음(佛性)을 내 마음 속에서 찾는다(見性)면 그때 도를 이루었다(成佛)할 것이다. 소(牛)가 마음(心)이라면 찾고자 하는 우리의 본래 마음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이 세계 모든 것은 덧없으므로 집착해서 가지려 한다고 해서 영원히 가질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무소유할 수 있는 이유다. 무소유란 자신이 필요한 만큼만 가지는 것이다. 필요한 만큼이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가지려 하거나 가지고 있을 때 고통(苦)이 없어야 할 것이다. 부처의 세계는 조화의 세계이다. 이 세상에 나 홀로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이 없으므로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해야 성공할 수 있다. 오늘은 내가 주인공이고 네가 조연이지만, 내일은 네가 주인공이고 내가 조연을 기꺼운 마음으로 해 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부처님과 경전과 스님은 각각이지만 또 하나이기도 하단다. 부처 자체가 진리이지만, 경전은 그런 부처의 가르침을 담고 있고, 스님은 부처의 가르침의 마음자리를 깨우치려는 큰 바람을 세웠기 때문이다. 통도사는 불보종찰(佛寶宗刹)이라 불린다. 부처님 사리(佛舍利)인 금강보계(金剛寶戒)를 모신 무덤(壇)격인 금강계단(金剛戒壇)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불교가 공인되어 널리 퍼지긴 하였으나 아직 체계가 잡히지 않아 신라 선덕여왕의 요청을 받은 자장율사가 불교의 기강을 세우기 위해 승려가 될 사람에게 불교교단에 들어가는 계(戒)를 주는 금강계단을 설치하고 통도사를 창건해 육성한 것이 오늘날 불보종찰로 자리매김된 큰 배경이 되었다. 절이 자리한 산 이름을 석가모니가 묘법연화경을 말한 영축산으로 짓고, 절 이름도 ‘통도(通度)’라 지은 것은 이 곳을 석가모니 당시의 영축산과 버금갈 정도의 사찰로 위치시키겠다는 비전의 선포였을 것이다. 이렇게 통도사는 창건 당시부터 불교를 믿는 사람들로 하여금 계를 받고 불교에 귀의하는 법도를 확립시키는데 크게 기여한 절이었으며, 이로 보아 계율종에 속하는 사찰이라 해도 무방한 듯 하다. 통도사는 부처님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寂滅寶宮)인 관계로 대웅전인 적멸보궁에 불상이 없다. 당연히 비어있는 불상 방향으로 적멸보궁 창문 너머 금강계단이 보인다. 부처님 말씀은 경전으로도 전해지지만, 절의 건축물 배치를 통해서도 그 뼈대를 드러낸다. 특히 통도사는 가람배치에서 현세 부처의 세계, 미래 부처의 세계, 그 사이 과도기의 세계, 영원 불변한 진리 그 자체의 세계 모두를 보여줘 불교의 세계관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데 영감을 받을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창건 당시의 ‘구룡연못’ 전설로 절을 수호하겠다는 아홉 번째 용을 머무르게 할 곳으로 연못을 다 메우지 않고 한 귀퉁이를 남겨 두었는데, 실제로 이 연못에서 물이 흘러나와 적멸보궁을 휘돌다 나가는 물길이 아직도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관심있는 분은 통도사를 둘러볼 때 적멸보궁 주위를 흐르는 물소리를 들어 보시길. 이 맑은 연못에는 예전부터 잉어를 키웠었는데 관람객들이 소원을 빌어 던지는 동전이 쌓이더니 어느 때부턴가 잉어가 모두 죽고 지금은 고기 한 마리도 살지 않는다. 이 사찰 한 스님 말씀이 “돈독이 제일 무서운 것이에요”... 통도사의 저녁 예불 의식을 꼭 한 번 보라고 권하고 싶다. 범종루에서 불교의 사물인 북ㆍ목어ㆍ운판ㆍ종을 다루는데, 계율 도량이어서 인지 스님들의 연주 솜씨가 완숙하다. 어스름이 깔릴 무렵 북, 운판, 목어에 이어 울리는 범종 소리는 내 발 밑의 땅을 진동시키고 이어 내 머릿속을 울리고 온 통도사 경내를 진동시킨다. 처음에는 그 진동소리가 너무 커 순간 아찔해지나 두 번 세 번 울려갈 때 신기하게도 머릿속이 맑고 깨끗해진다. 33번 울려갈 동안 넓은 절과 내가 하나가 되어 편안하고 아득해진다. 이것이 혹시 부처의 세계인가 느낄 정도로. 언뜻 솜씨 있는 절의 예불의식은 일순간 부처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공양. 절 밥이 다 그게 그거지 하실 분들에게 ‘맛있고 정성스런’ 공양의 기억을 선사한다. 전반적으로 통도사의 분위기는 불교를 수행의 관점에 앞서 신앙으로 바라보시는 분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절인 듯싶다. 해인사는 법보종찰(法寶宗刹)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해인사가 법보종찰의 위치에 오른 계기가 불교 배척을 국시로 내건 조선시대 초기의 정책적 결정에 의해서였다는 것이다. 고려 시대까지 강화도에 보관하던 팔만대장경을 해인사로 옮겨 옴으로써 세계문화유산이 된 전통과학건축의 진수 대장경판전을 새로 짓고 역시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판을 이 곳에 두게 되었다. 고려 건국시에는 후백제의 견훤을 뿌리치고 고려 태조를 도움으로써 일약 국찰(國刹)로 도약한 정치적 판단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팔만대장경판을 모신 대장경판전은 대적광전 뒤에 배치돼 있어 이 절이 법보를 모신 사찰임을 눈으로 보여준다. 해인사는 본래 화엄종에 속한 사찰이다. 우주 만물의 본 모습을 거울 같은 바다에 도장 찍듯이 있는 그대로 본다는 의미의 ‘해인(海印)’ 이라는 구절을 화엄종의 경전인 화엄경에서 가져와 절 이름을 지었다. 화엄사찰이므로 대웅전 자리에 대적광전(大寂光殿)을 두고 그 안에 주불(主佛)로 비로자나불을 모시는데 비로자나불이란 ‘본래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보는 지혜의 본체’를 말하며, 석가모니가 깨달은 크고 넓어 변두리가 없는 세계 바로 그 자체인 것이다. 석가모니의 종교적 차별성이 여기에서 나타난다. 석가모니는 우주를 창조해 냈다거나 사람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닌 생겨나지도 않고 없어진 적도 없는 원래부터 있던 세계가 서로 관계하여 나고 사라짐의 진면목을 밝힌 것이다. 석가가 깨우친 것은 비로자나불과 같은 경지이므로 비로자나불을 모신다는 것은 바로 석가의 지혜를 얻고자 함과 다름 아닐 것이다. 해인사에는 사진작가에게 흥미로운 장소가 있다. 대장경판전 문 안쪽에서 아래의 대적광전 방향으로 사진을 찍을 때 일 년에 두 번 정도 대장경판전 정문 처마선이 햇빛에 그림자로 비쳐 연꽃을 엎어 놓은 정확한 모양이 된다. 그 시각 스님이 대장경판전 문 앞에 서서 합장을 하면 연꽃 위에 스님이 서 있는 것 같은 성스러운 모습이 연출된단다. 비단 그 모습이 아니더라도 대장경판전 안쪽에서 대적광전을 바라보는 방향의 겹치는 문 모양은 참 아름답다. 더불어 종각 옆 뜰의 탑돌이 구획선은 미로형으로 좁은 면적임에도 많은 운동량을 얻도록 설계되어 있으니 한번 연인과 함께 돌아 보시길… 송광사가 승보종찰(僧寶宗刹)이 된 데는 보조국사 지눌을 빼 놓고 얘기할 수 없다. 불교 쇄신 운동인 정혜결사(定慧結社) 운동을 송광사로 옮겨와 본격적으로 전개함으로써 이후 자신을 포함한 16국사를 이 절에서 배출하는 등 수행도량으로서 기반을 놓았기 때문이다. 지눌스님의 무덤인 부도탑 감로가 지금도 송광사 경내 왼편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정혜결사 운동의 핵심인 돈오점수, 정혜쌍수라는 중생최우선 정신을 잊지는 않고 있는 지 경계하고 있다. 석가모니시기 깨달은 자들을 모신 승보전을 세워 승보종찰의 위상을 드러내고 있으며, 승보전 외벽 둘레에 그린 심우도는 심우도의 본보기라 할 만큼 명쾌하다. 과거ㆍ현재ㆍ미래의 부처님을 모신 대웅보전에는 불상 뒤편 아래에 1988년 중창불사 당시 부처 진신사리 탑과 금강경을 새로 넣어 놓았는데, 금강경은 지눌스님의 정혜쌍수 정신을 받든 것이라면 무방하다 하겠으나, 불사리탑은 오히려 속이 비어 있어야 승보종찰의 기개에 맞지 않을까 염려하는데 수행스님들의 생각은 어떨지 모르겠다. 송광사에는 종ㆍ북ㆍ목어ㆍ운판의 사물이 있는 종고루가 대웅보전 정면에 위치해 있다. 더욱 정확히는 미래불인 미륵불 정면에 위치해 있는데 사물은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치는 것이라 하므로 수행 스님들의 빠른 성불을 재촉하는 의미가 아닐까? 송광사에는 없는 것이 있고, 있는 것이 있다. 흔히 있는 풍경ㆍ탑ㆍTV가 없고, 수행승들의 하루 세끼 발우공양이 있다. 풍경과 TV가 없는 것과 삼시 발우공양을 엄수하는 것은 수행에의 정진을 위해 규율이 엄한 것일 텐데, 탑이 없는 것은 왜일까? 탑은 원래 부처의 사리를 모신 무덤이고 생전의 부처님을 숭배하는 것이다. 절은 부처가 되려는 자들이 모이는 장소다. 탑이 없는 송광사에서 여기저기 걸어 다니는 탑들이 많이 보여 더 이상 탑을 세울 공간이 없기를 기원해 본다. 대웅보전 뒤로 부처의 가르침을 전하는 설법전을 두어 승보종찰로서의 정체를 명확히 하고 있는데 대웅보전과 설법전 사이에 진여문(眞如門)이라는 작은 문이 있다. 이 문은 항상 닫혀 있어 마음으로만 열 수 있는 문이라고 한다. 송광사의 행자, 사미, 비구들이여. 내공(수행), 외공(보시)을 부지런히 쌓아 그 무량공덕으로 우주 만물의 실상을 깨우쳐 진여문을 열어 제치고 설법전에 올라 부처의 마음을 설하라. 비구니는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이 이미 진여요 실상인데 열어 젖힐 문이 따로 어디 있으며, 내가 가는 곳이 설법전인데 어디 따로 갈 곳이 있으랴.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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