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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승수 법무법인 지평지성 변호사, 음원 표절·연예인 전속계약 소송 중재자 역할
● 최정환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설국열차 제작때 조세·저작권 등 법률 자문
엔터테인먼트 전문 변호사를 '연예인 전문 변호사'로 여긴다면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이들은 연예인과 관련된 민·형사 사건을 대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영화와 음악, 게임, 방송 콘텐츠, 미술, 패션까지 광범위한 분야에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문화 산업의 첨병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의 산업화를 넘어 '한류(韓流)'의 첨병으로서 우리 문화의 글로벌화에 이바지한다는 점에서 엔터테인먼트 전문 변호사의 활약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올해 영화계에서 화제가 됐던 영화 '설국열차'는 순제작비만 430억원에 이른다. 투자자 대부분이 외국인이며 촬영지도 외국이고 제작 스태프도 외국인으로 구성될 만큼 국내 블록버스터 영화의 전환기적 작품이다. 여기에 더해 국내 법무법인(로펌)이 일괄수주계약 방식으로 종합법률서비스를 제공한 최초의 영화이기도 하다. 외국처럼 제작 예산 중 일부를 법률비용(legal fee)으로 정해두고 영화를 제작한 첫 사례인 셈이다.
설국열차 제작과정에서 종합법률 자문을 맡았던 최정환(52·사법연수원 18기)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외국에서 촬영하다 보니 외환과 조세, 소송 관할, 저작권, 출연 배우들의 권리 등 여러 분야의 자문을 종합적으로 제공해야 했다"면서 "광장의 엔터팀을 비롯해 다른 분야 변호사들도 함께 머리를 맞댔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국내 엔터테인먼트 1세대 전문 변호사로 알려진 인물이다. 1989년부터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파고 든 그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를 설립해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업계 인맥도 화려해 지금은 거장이 된 강우석 감독이나 강제규 감독, 영화배우 박중훈씨 등이 최 변호사와 '영화판'에서 동고동락을 함께 한 사람들이다. 대중가요계 쪽에서는 가수 박진영과 비의 데뷔 계약 자문을 맡기도 했다.
최 변호사와 광장 엔터테인먼트팀의 법률서비스는 영화에만 그치지 않는다. 인기 게임인 '블리자드 디아블로'와 '스타크래프트'의 법률자문을 맡아 청소년 셧다운 제도와 과몰입방지, 개인정보보호법 규제 등에 대해 자문했다. 한식 브랜드 '비비고'의 미국 진출과 '불고기 브라더스'의 해외 프랜차이즈계약 등에 대한 자문 업무도 그의 몫이었다.
1980년대 외국 변호사들에게 계약서 용어에 대해 물어가며 일을 하고 거의 독학하다시피 관련법을 파헤치며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개척해 온 최 변호사는 앞으로 국내 엔터법 분야의 전망을 낙관했다. 최 변호사는 "지금이야말로 국내 엔터 변호사들이 외국 변호사들과 견줄 수 있는 트레이닝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언젠가 우리나라 변호사가 외국 영화사의 제작 자문을 해주는 때가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화를 잘 이해하는 변호사로는 조광희(46·연수원 23기) 법무법인 원 변호사를 빼놓을 수 없다. 직접 영화사 대표로 일하며 영화 제작의 현장에 뛰어들기도 한 조 변호사는 업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영화진흥법 제정과 영상물등급위원회 등급보류제(구 영화진흥법 제21조 제4항)의 위헌 결정이라는 기념비적인 업적을 일궈냈다.
조 변호사는 '영화통' 답게 영화 제작과 관련된 분쟁 사건을 상당수 맡아 처리했다. 먼저 역사적 가정을 모티프로 한 영화 '로스트 메모리즈'가 기존 역사소설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제기된 소송에서 법원으로부터 "역사적 배경이나 주제 등이 비슷하지만 사건의 전개와 결말, 갈등의 해결방식 등에서 차이가 있고 구체적인 표현형식이 달라 사실상 모방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그는 "어떤 사람이 먼저 (아이디어나 컨셉트를) 사용했다고 이를 법률적인 저작권 침해로 본다면 창작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변호사는 영화 '범죄의 재구성'과 '하얀방'의 상영금지 가처분신청 사건 등에서 영화제작사를 대리해 잇달아 승소하기도 했다. 미국 폭스(FOX)스튜디오의 한국영화산업 투자자문을 맡는 등 다수의 영화 제작·투자 자문건을 맡은 것도 그의 이력에서 빠질 수 없다.
조 변호사가 영화 분야 사건만 수임해온 것은 아니다.
조 변호사는 지난 2010년부터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가수 태진아-이루 부자의 명예훼손 사건에서 이들 부자를 대리했다. 작사가인 최모씨가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태진아와 이루 부자에 대한 허위사실을 여러 차례 올린 사건이었다.
조 변호사는 "이 사건은 법리논쟁을 이끌어가는 것도 중요했지만, 연예인의 입장을 적시에 대외적으로 알리는 '소송 관리'도 못지않게 중요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제3자가 보기에는 진위를 알 수 없는 상황이기에 우리만의 신뢰를 얻어가는 방식이 매우 필요했다"며 "적정한 타이밍과 소송에 영향을 주지 않을 만큼의 정보 공개가 어느 수준인지 등을 치열하게 고민했던 사례"라고 말했다. 결국 법원은 최씨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징역형을 확정했다.
조 변호사는 배우 송혜교씨의 '스폰서 루머'를 유포한 네티즌을 고소한 사건에서 송씨를 대리해 유죄 판결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업계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또 한 명의 엔터테인먼트 전문 변호사는 최승수(49·연수원 25기) 법무법인 지평지성 변호사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의 이사이기도 한 그는 음반 업계에 정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 변호사는 지난 2011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밴드 씨앤블루의 '외톨이야' 표절 사건에서 승소를 이끌어내며 이름을 알렸다. 인디 밴드인 '와이낫'이 외톨이야와 자신의 곡 '파랑새'와 유사하다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사건이었다. 최 변호사는 외톨이야의 작곡가를 대리했다. 최 변호사는 "저작권 소송에서 핵심은 원 저작물의 '오리지널리티(독창성)'이 인정되는지 여부"라며 "당시 사건도 파랑새 후렴구 역시 다른 음악(선행음)과 유사하다는 점이 쟁점 중 하나였는데 법원이 '후렴구의 독창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법원은 외톨이야가 파랑새를 베끼지 않았다는 판결을 내놨다.
최 변호사는 한참 화제가 됐던 '동방신기 소속사 갈등' 사건도 담당했다. 동방신기 멤버 3명이 "SM엔터테인먼트의 전속계약은 노예계약"이라며 계약 취소 소송을 낸 사건이었다. 연예계의 전속계약 실태가 사회적 논쟁의 이슈로 떠오른 사건이었는데 최 변호사는 소속사인 SM을 대리했다.
최 변호사는 "동방신기 사건은 우리나라 전속계약의 특성을 이해한 다음에 봐야 할 문제"라고 전제했다. 외국과 달리 우리 연예계는 어린 나이에 발탁된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보컬과 안무 트레이닝, 심지어 학업까지 돕는 '인큐베이팅 시스템'으로 작동되기 때문에 '데뷔 시점부터 10년 전속계약'은 어쩔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법원의 조정으로 3년 만에 마무리가 됐다.
최 변호사는 연예인 분쟁은 '중재'로 다뤄져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실제 대한상사중재원에서 엔터테인먼트 분야 중재인을 맡고 있는 그는 "소송 제기와 법원의 판결로 해결 볼 수 있는 범위는 제한적"이라며 "차라리 업계를 이해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단심으로 진행되는 중재를 거쳐 서로 피해를 입지 않는 방향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강조했다.
지평지성 엔터테인먼트팀이 최근 미국계 로펌인 셰퍼드멀린과 공동으로 개최한 '엔터테인먼트업계 분쟁조정 방법' 등에 관한 세미나도 최 변호사의 이러한 소신이 반영된 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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