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대로변 노천 까페에 앉아 '섹스머신', '섹스계의 호날두'를 외쳐도 음란한 느낌이 들지 않고 '아기 코끼리', '신화 속 새' 등 생소한 체위의 이름을 줄줄 꿰는 데도 어쩐지 귀엽기만 하다. 성 경험 한 번 없는데도 섹스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을 가진 아이러니한 배역을 맡은 배우가 최강희(33ㆍ사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동안 얻어걸리는 게 많았죠."1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최강희는 '얻어걸렸다', '운이 좋았다'는 표현을 많이 썼다. 데뷔한 지 벌써 15년. 그동안 최강희의 필모그래피는 대부분 자발적으로 선택한 게 아니었다. 서른이 넘는 나이에도 교복을 입는 배역을 맡고(애자), 사람을 죽이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연애를 하는 모습(달콤, 살벌한 연인)은 최강희가 하고 싶었다기 보다는 다른 이들이 최강희에게 기대한 캐릭터들이었다. 그동안 그는 영화가 개봉된 후에야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왜 자신이 그 배역을 맡았는지 뒤늦게 깨달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영화 '쩨쩨한 로맨스'에선 왜 이 배역을 자신한테 줬는지, 어떻게 해야 되는지 먼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제가 아무리 세게 음담패설을 해도 강하게 보이지 않아요.'여자도 사정하는 거 몰라요?'같은 대사에도 관객들은 그냥 웃기만 하죠. 제가 아무리 강하게 해도 그만큼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니 겁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껏 연기했어요."'엉뚱','4차원', '동안' 등의 이미지가 아무리 강한 역도 순화시킨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는 "이제는 바람을 뺄 때"라고 말한다. 그동안 너무 캐릭터가 강한 역할들을 해 왔는데 이젠 동시대에 공감이 될 만한 인물을 그리고 싶다는 바람이다. "원래 좋아하지 않았다가도 어떤 작품을 계기로 '형님, 몰라봤습니다'라는 느낌이 드는 배우들 있잖아요. 케이트 윈슬렛 같은 배우 말이죠. 그렇게 '재발견'되는 지점이 좋은 것 같아요." 이제 '얻어걸리는'게 아니라 스스로 길을 찾겠다는 최강희는 '재발견'의 출발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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