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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대통령, 과학적 사실 근거로 정책 결정하라"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리처드 뮬러 지음, 살림 펴냄)<br>"테러리즘·에너지·우주·온난화가 10년 후 세계 움직일 과학 코드"<br>대통령, 물리학 모르면 국가 위험


9·11테러로 세계 무역센터가 무너진 것은 설계 상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충돌한 비행기 연료로 인한 화재로 철골기둥이 녹아내린 탓이었다. 이 같은 과학원리를 안다면 테러 대비를 위해 설계 안전 점검에 앞서 화재 대비책을 먼저 강화하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다.

1969년 7월 미국의 닐 암스트롱을 태운 아폴로 11호가 발사된 이후로 42년이 지났지만 인류는 아직 그 누구도 달에 가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과학기술 부족이나 비용의 문제일까? 유인(有人) 달 탐사계획은 존 F.케네디가 1961년에 제안한 "1970년이 되기 전에 달에 우주비행사를 보냈다가 무사히 귀환시킨다"는 계획과 관련 있다. 마침내 달 착륙 성공은 소련과의 우주개발 경쟁, 암살당한 케네디의 명예 회복이라는 두 가지 열망을 모두 달성했다. 첫 성공 이후 우주여행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급감했다. 하지만 더 이상 인간을 우주왕복선에 태워 보내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는 막대한 비용과 위험부담 때문이다. 우주선이 발사되는 순간의 운동에너지가 열에너지로 전환되면 그 온도는 태양 표면보다 10배나 뜨거워지며 중력변화 역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다. 중성미자와 핵에너지 분야의 전문가이자 과학 명문 UC버클리의 물리학 교수인 저자는 "안전하지 못한 모험은 접고 과학 활동은 로봇을 이용한 자동화에 맡기는 것이 가장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며 "당신이 대통령이라면 유인 우주계획에 대한 우선순위는 낮추고 과학 연구와 탐사를 정부 연구 프로그램의 주요 목표로 삼으라고 조언하고 싶다"고 말한다. 대통령을 위한 정치학이나 복지이론이 아닌 '물리학'이라는, 다소 특이한 주제의 이 책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 판단할 때 더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을 담고 있다. 국내에서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광우병 논란이나 천안함 사고 원인을 둘러싼 논쟁 등 과학기술과 정책이 긴밀히 연결된 사례가 많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이 책에 눈길이 간다. 책은 오바마 정부의 고위 과학고문을 지낸 과학ㆍ안보 분야의 정책 전문가인 저자가'국민이, 대통령이 물리를 모르면 국가가 위험하다'는 발상 아래 '미래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이라는 이름으로 UC 버클리에서 한 강의를 엮은 것인데, 2009년 재학생들이 선정한 그 해의 최우수 강의에 뽑히기도 했다. 가령 9ㆍ11 테러로 세계 무역센터빌딩이 무너진 이유가 설계 부실 탓이었을까? 아니다. 그랬다면 소방대원의 구조센터가 그 건물 1층에 마련되지도 않았을 일이다. 충돌한 비행기의 연료인 가솔린 때문에 발생한 대형화재로 철골기둥이 녹아내린 게 건물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그렇다면 테러에 대비하기 위해 건물 구조와 설계 안전도 점검을 강화하기에 앞서 화재 대비책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한편 무섭게 치솟는 기름값으로 에너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앞으로도 더 커질 것이다. 가솔린은 석탄보다 20배나 싼 가격에 같은 에너지를 낼 수 있으며 무게가 같은 총알의 720배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낸다. 1kg의 수소연료는 같은 양의 가솔린보다 3.4배 더 주행할 수 있지만 가솔린보다 훨씬 더 큰 공간을 차지하기 때문에 수소는 연비로 가솔린을 이길 수 없다. 결국 화석연료에 집착하는 것은 가격 경쟁력 때문인데, 저자는 채굴 기술 발달과 채취 가능 퇴적층 확대로 인해 쉽사리 화석연료가 바닥날 일은 없다고 위안한다. 대신 핵융합과 대안 에너지들의 연구 개발계획을 유지시켜야 한다고 미래의 대통령에게 조언한다. 국정 운영의 수장을 위한 책인 만큼 저자는 ▦테러리즘 ▦에너지 ▦원자력 ▦우주 ▦지구온난화 등 5개 중심 주제로 구성했으며 이들 주제가 10년 후 세계를 움직일 과학코드라고 설명한다. 뉴스를 통해 접할 수 있는 실제 최신 이슈들을 예시로 방대한 정보를 쉽게 설명하고 있어 비전공자가 읽더라도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책이다.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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