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4년 6월15일, 미국 의회가 12차 수정헌법안을 최종 비준했다. 골자는 정ㆍ부통령 후보에 대한 별도의 투표용지 채택. 러닝메이트 제도가 이때부터 완전하게 자리잡았다. 신생 미국이 대통령선출제도를 뜯어 고친 것은 1800년 대선의 후유증 때문. 공화파의 토머스 제퍼슨과 애런 버가 짝을 이뤄 연방파의 존 애덤스를 여유 있게 눌렀으나 이듬해 초 선거인단 투표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몇몇 선거인의 실수로 제퍼슨과 버가 동수의 표를 얻은 것. 다득표자가 대통령, 2위 득표자가 부통령이 되는 규정 아래 두 사람은 졸지에 경쟁자가 돼버렸다. 팽팽한 대결은 하원 결선투표에서도 이어져 과반수 미달로 36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제퍼슨은 간신히 버를 눌렀다. 난전 속에 대통령과 부통령에 취임한 둘의 관계가 원만할 리 만무. 대통령은 부통령을 노골적으로 따돌렸다. 부통령 버는 결투로 인한 살인혐의로 쫓겨다니며 임기를 겨우 마쳤지만 종국에는 서부에 개인왕국을 세우려 한 반역자로 몰려 불운한 말년을 보냈다. 공교롭게도 제퍼슨에게 패했던 애덤스 전 대통령의 아들이자 상원의원 시절 12차 수정헌법에 가장 반대했던 존 퀸시 애덤스는 이 법 덕분에 1825년 대통령에 올랐다. 선거인단 투표에서 2위에 그쳤으나 과반미달로 인한 재선거에서 4위 득표자의 도움으로 대통령에 올랐다. 자신의 뜻대로 법이 바뀌지 않았다면 부통령에 머물렀을 후보가 대통령이 된 것이다. 득표 1위였음에도 눈앞에서 대통령직을 놓친 잭슨은 다음 선거에서 대승을 거둬 백악관에 입성한 뒤 기득권층을 배제하는 정책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정ㆍ부통령 러닝메이트 제도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 임기 중임제 개헌과 더불어 언제든지 쟁점화할 있는 변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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