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용은 충청도(충북 증평) 출신답게 온건하고 느긋한 바둑을 둔다. 싸워서 이기는 길보다는 집으로 이기는 궁리를 먼저 한다. 바둑뿐만 아니라 인품도 마찬가지. 동료 기사들은 그가 지금까지 화내는 것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승부처에서 최선의 수를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하고 균형감각이 아주 좋아서 아무도 그를 경시하지 못한다. 겸손하면서도 강직하다. 이번에 연승행진을 계속하자 기자들이 그에게 물었다. "목표를 어떻게 잡고 있나요?" 이 질문에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우승…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군요." 얼마나 솔직한 대답인가. 그 무렵에 김기용은 16강전을 이겨 8강에 진출한 터였다. 겸손하게 '준결승까지만 올라가면 만족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승부사로서 할 말이 아니잖은가. 그렇다고 '우승입니다' 하고 대답하기에는 그의 온후한 인품이 용납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16강전에서는 박승현6단과 만났는데 1984년생인 박승현 역시 영감님 같은 풍모의 기사여서 두 사람이 대좌한 모습은 마치 '전원일기'에 나오는 양촌리 마을 정자나무 밑의 분위기 같았다. 끝내기에서 어렵사리 김기용이 역전승을 거둔 바둑이었다. 흑37은 완착. 이 수로는 36의 자리를 선점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균형 감각이 뛰어난 김기용이 대세점인 백36을 놓치지 않았고 여기서부터 그가 형세를 리드하게 되었다. 이세돌은 흑39에서 흑43까지 완력으로 위압하려고 했지만 이 작전 역시 무리였다. 백46의 반격이 날카로와서 흑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게 되고 말았다. 물러서지 않고 싸우려면 참고도1의 흑1로 끊어야 하는데 백2 이하 8까지 되고 나면 백이 지극히 두기 편한 바둑이다. 이세돌은 궁여지책으로 흑47에 물러났는데 시쳇말로 완전히 스타일을 구긴 장면이었다. 기분이 좋아진 김기용에게서도 태평스러운 완착이 하나 나왔다. 백58로 받은 이 수. 아마추어 같은 미련한 수였다. 이 수로는 참고도2의 백1에 받고 흑2면 백3에 하나 밀고 선수를 뽑을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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