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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금 큰일 났어요. 대구에 미분양이 1만2,500가구밖에 안된다고요? 허허, 다 지어놓고 입주 못하는 것까지 합하면 3만가구도 넘을 건데….” 지난 4일 대형 건설사의 유명 브랜드 로고가 선명하게 내걸린 대구시 북구의 한 재건축 아파트 공사 현장. 몇몇 인부들이 이따금 공사장을 드나들 뿐 주변은 인적 없이 썰렁하다. 현장 바로 앞에서 허름한 부동산 중개업소 두 곳이 영업 중이지만 손님은 찾아볼 수 없다. 1년 6개월여 전 분양을 시작한 이 아파트는 일반분양분 380여가구 중 110여가구가 아직 주인을 찾지 못했다. 중도금 무이자는 언제부턴가 대구 전역에서 ‘기본사양’이다. 인근 대림공인의 구은희 사장은 “분양가도 주변 시세보다 비싼데다 공급이 너무 많아 (미분양 물건을) 찾는 사람이 전혀 없다”며 “미분양 재고가 어느 정도 정리되려면 1~2년은 걸리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대구 미분양 아파트의 70%가 몰려 있다는 달서구로 넘어가봤다. 두류공원을 끼고 성당동에 접어드니 사방으로 거대한 아파트 공사장이 펼쳐진다. 내로라하는 대형 건설업체 브랜드가 대부분이지만 공사장 펜스에는 ‘기대하세요! 파격조건 대공개’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주변 중개업소들의 유리벽도 마찬가지. 하나같이 ‘108㎡ 분양권, 조합원 분양가에서 -4,100만원, 1억9,900만원’ 같은 시세표로 도배돼 있다. 달서구 재건축의 시발점 노릇을 했던 성당동의 K단지는 입주 6개월여가 지났지만 새시 없는 발코니가 수없이 눈에 띈다. 총 780여가구 중 270여가구가 아직 빈집이다.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입주 지연에 따른 연체이자와 관리비만도 매달 100만원이 넘는다”며 “남편 몰래 계약금 1,000만원을 걸어놓고는 여태껏 속앓이 하는 주부도 있다”고 전했다. 부산 역시 대구보다 더하면 더했지 나을 게 없는 상황이다. 정관지구 모델하우스들이 모여 있는 해운대신도시는 온통 ‘세일 중’이다. ‘무이자’ ‘취득ㆍ등록세 지원’ 등은 물론 심지어 ‘백화점상품권ㆍ여행상품권’ 등 ‘보너스’까지 내세우는 대형 플래카드들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손승익 부산 정관지구 롯데캐슬 분양소장은 “시내에도 입주 후에 불이 꺼진 집이 절반 이상”이라며 “업계는 부산시내 입주 후 미분양 물량을 1만여가구로 추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도심 재개발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인 동래구 사직동에는 입주가 시작된 지 1~2년이 지난 아파트에도 ‘회사 보유분 특별분양’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버젓이 걸려 있었다. 박재욱 메가공인중개사 대표는 “올해 들어 주택거래가 올스톱 상태이기 때문에 기존 주택이 처분되지 않아 입주를 미루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미분양 해소 방안으로 검토 중인 ‘투기과열지구 해제’ 역시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대구 대부분 지역이 투기과열지구에서 풀린 지 두달이 지났지만 상황은 오히려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것. 분양권 전매가 자유로워지자 오히려 예전에는 팔지 못하던 매물들까지 대거 쏟아져나와 바야흐로 ‘매물 홍수’를 이루고 있다. 집을 팔러 나왔다는 한 50대 여성은 중개업자의 설명을 듣고 “수천만원씩 떨어진 분양권들이 이렇게 많은데 내 집은 1년 안에 팔리기나 하겠냐”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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