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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은행과 외환은행 간 통합 작업을 오는 6월 말까지 중단하라는 법원의 결정이 나오면서 하나·외환은행 통합에 급제동이 걸렸다. 두 차례의 연기 끝에 4월부터는 통합법인을 출범시키려던 하나금융의 목표는 물거품이 됐고 노조와의 합의 없이도 통합 승인을 내줄 수 있다는 방침을 시사했던 금융당국도 타격을 받았다.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물론 2월 중 예비인가 승인을 내주겠다고 공언해온 신제윤 금융위원장의 리더십까지 흔들릴 것으로 보여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더욱이 법원이 하나·외환은행 조기통합의 당위성으로 하나금융 측이 제시했던 '외환은행 생존 문제' 등 핵심적 논리를 사실상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조기통합 작업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법원의 결정에 힘입은 노조의 입김이 거세질 것이고 야당까지 합세할 것이 뻔한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6월 안에 예비인가를 내주기는 쉽지 않다. 당장 5일로 예정된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신 위원장은 상당히 난처한 입장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설령 6월께 극적으로 예비인가를 내주고 본인가 등의 절차를 강행한다고 해도 일러야 8∼9월에나 통합법인이 출범할 수 있다. 그나마 김 회장이 노조와의 전향적 협상으로 위기를 극복하지 못할 경우 하나·외환 통합은 장기간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4일 외환은행 노조가 외환은행과 하나금융지주를 상대로 낸 합병 작업 중지요청 가처분신청에 대해 "6월30일까지 외환은행은 금융위원회에 하나은행과의 합병을 위한 인가를 신청하거나 하나은행과의 합병을 승인받기 위한 주주총회를 개최해서는 안 된다"며 "하나금융지주도 외환은행이 하나은행과의 합병을 승인받기 위해 개최한 주주총회에서 합병 승인에 찬성하는 내용의 의결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고 일부 인용 결정했다.
법원의 결정 직후 금융위는 하나금융 측이 제출한 예비인가 승인 신청을 6월 말까지 늦출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법원의 판단은 하나금융도 금융당국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돌발변수'다. 하나금융 측은 지난해 노조가 제기한 외환카드 분사 절차 중지 가처분신청을 법원이 기각했던 만큼, 이번에도 비슷한 결과를 기대했다.
김 회장 또한 지난 2일 하나ㆍ외환은행 중국현지 통합법인 출범식에서 11일 예정된 금융위의 하나-외환 통합 예비인가 승인 결정과 관련 "그날이 내 생일이니까 좋은 일이 있을 것으로 본다"며 상황을 낙관했다. 예상치 못한 사태가 터지자 하나금융 측은 이날 오후 통합추진위원회를 긴급 소집,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하나금융 측은 일단 법원의 결정은 겸허히 받아들이되 이의신청을 포함한 다각도의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통합 시기가 수개월 늦춰지는 것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이번 법원의 가처분 수용 판단 근거가 하나-외환 통합을 위해 하나금융이 제시했던 통합 당위성을 상당 부분 반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통합을 반대하는 노조와 야당 측의 논리로 두고두고 활용될 수 있어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합병은 경영권의 문제'라는 하나금융 측 논리를 일부 인정하면서도 외환은행의 5년간 독립경영을 보장한 '2.17합의서'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두 은행을 합병하는 것이 경영권에 속하는 내용이지만 노사의 단체교섭으로 체결된 내용이 법규나 질서에 위배되지 않는 한 효력을 인정해야 한다"며 "합의서 내용이 합병을 전면 금지하는 것이 아닌 일정 기간 제한하는 내용이어서 경영권의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의 조기 합병이 양 은행의 실적 개선에는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지금 당장 합병을 하지 않으면 외환은행이 생존이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이 초래되며 합의서의 이행 강요로 명백하게 부당한 결과에 이른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김정태 회장이 지난해 7월 긴급 간담회에서 "현재와 같은 금융 생태계에서 조기통합을 하지 않으면 외환은행이 생존이 어렵다"면서 내세운 조기 통합의 명분에 커다란 상처가 생긴 셈이다.
법원의 예상치 못한 결정으로 하나금융은 혼란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통합 작업이 일러야 7월에나 가능해져 비상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하나·외환은행의 조직구성에 변화가 불가피하다. 3월 주주총회에서 임기 연임을 앞두고 있는 김 회장에게도 상처가 불가피해졌다.
김종준 전 하나은행장의 사퇴 후 김병호 행장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 중인 하나은행장 자리도 골칫거리가 됐다. 직무대행 체제를 상반기 내내 끌고 가기에는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차기 은행장을 선출하기도 쉽지 않다. 통합이 불확실한 상태에 봉착한 만큼, 통합을 대비한 여신 운용 등 구체적인 은행 경영 그림을 그리기도 어렵게 됐다. 이래저래 하나금융이 거대한 암초에 부딪힌 셈이다.
금융당국 또한 리더십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금융위는 야당 일각과 노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노조와의 합의를 마냥 기다리는 것이 오히려 직무유기"라며 사실상 노조와의 합의 없이도 하나·외환 통합 승인을 해줄 수 있다는 입장을 시사해왔다.
하나금융측에 확실히 힘을 실어주며 이번 사안을 금융위가 마무리 짓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신 위원장은 실제로 "노사 합의 없이 두 은행의 통합을 승인할 수 있다"고 외환은행 노조를 압박해왔다. 하지만 법원이 하나·외환의 통합 논리마저 반박하는 판결을 내놓으면서 금융당국의 입지는 크게 흔들릴 수 밖에 없게 됐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법원 변수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통합 승인이라는 카드를 너무 섣불리 던졌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금융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외환노조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너무 쉽게 패를 노출하고 결과적으로 당국이 그 책임을 떠안는 꼴이 되어 버렸다"며 "앞으로 통합 작업에 있어서도 금융위의 역할이 상당히 제한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정치금융'화된 노조에 금융당국과 하나금융이 모두 허를 찔렸다는 것은 뼈아픈 부분이다. 이번 법원 판결에 따라 하나금융이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던 하나·외환은행 통합 논의에서 다시 노조의 입김이 거세질 것으로 보이며, 두 은행 통합을 통해서 국내 은행 구도를 경쟁적으로 재편하려던 금융당국 또한 추진 동력을 상당 부분 잃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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