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폐렴으로 서울의 한 병원에 입원한 안세희(가명)씨. 몇 주가 지나도 병세에 차도가 보이지 않자 담당의사는 협력병원인 A대학병원으로 옮길 것을 제안했다. 집에서 거리가 먼 A대학병원으로 옮기는 것이 다소 망설여졌지만 안씨는 '협력병원'이란 말을 믿고 A병원의 응급실로 이송됐다.
하지만 협력병원이니 뭔가 다를 거라는 기대와 달리 안씨는 아무런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A병원 측은 이전 병원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며 응급실에서 대기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안씨는 결국 퀵서비스까지 이용하며 이전 병원으로부터 각종 검사서류를 넘겨 받아야만 했다.
안씨는 "협력병원으로 가라며 내가 받은 것은 두 장 짜리 진료 의뢰서가 전부였다"며 "환자정보 공유가 전혀 안 되는데 협력병원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16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원활한 환자 의뢰 등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 협력병원제도가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협력병원은 애초 병원 간의 정보교류와 의료자원의 효율적인 활용을 위해 개인병원 등 1·2차 의료기관과 대학병원 등 3차 의료기관이 체결하는 협약(MOU)으로, 1·2차 의료기관이 검사장비의 부족 등으로 치료할 수 없는 중증환자들을 3차 의료기관에 보다 쉽게 진료를 의뢰하기 위해 체결된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거리가 멀다.
한 대학병원의 관계자는 "협력병원은 단순히 원론적인 측면에서 의료기관 간 "잘 해보자" 정도의 협약이어서 구속력은 없다"며 "협력병원이라는 이유로 환자의 진료기록을 요청하거나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학병원이 협력병원을 맺는 이유는 사실 새로운 고객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실제로 이 병원은 1,000여개의 1·2차의료기관과 협력병원을 맺은 상태다.
1·2차 의료기관에서도 협력병원은 마케팅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의 한 병원은 '서울대병원, 고려대병원,강남세브란스병원 등과 협력관계에 있다'고 홍보하고 있으며 인천의 한 병원도 '건국대병원과 협력병원 협약 체결을 맺었다'고 홍보를 하고 있다.
한 1차 의료기관 관계자는 "1·2차 병원은 응급상황 등의 발생에 대비하기 위해, 대학병원은 환자사례 연구나 환자유치 등을 위해 협력병원 협약을 맺는다"며 "다만 가까운 위치에 있다거나 단순히 해당 대학병원 출신이라는 이유 등으로 협력병원을 맺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환자 입장에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 관계자는 "각 병원마다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다르고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협력병원이라 할지라도 환자정보를 전산으로는 공유할 수는 없다"며 "다만 협력병원에서 받은 각종 검사결과를 인정해 똑같은 검사를 또다시 하지 않는 등의 효과는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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