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미술은 자동차 디자이너인 나에게 열린 마음을 유지하고 실험적 시도를 계속할 수 있게 해 주는 하나의 훈련(training)같은 것입니다."
크리스 뱅글, 월터 드 실바와 함께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손꼽히는 피터 슈라이어(Peter Schreyerㆍ59ㆍ사진) 기아자동차 최고 디자인책임자(CDO)는 자신의 '감성디자인'이 순수예술 활동에서 기인했음을 설명했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기아차 쏘울(Soul)을 비롯해 K5, K7, K9과 최근 출시된 K3 등 K시리즈로 국내에서 높은 명성을 쌓고 있다. 그런 슈라이어가 자동차가 아닌 회화와 드로잉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생애 첫 개인전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을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현대 강남점에서 오는 22일부터 11월2일까지 연다.
전시 개막에 앞서 19일 기자들과 만난 슈라이어 부사장은 신차 K3에 대한 질문에도 "무척 멋진(nice) 차이지만, 자동차디자이너로서의 피터 슈라이어는 내일부터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로 갈음할 정도로 세계적 디자이너의 위상은 잠시 내려놓은 채 순수 예술가의 역할에 집중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전 생애를 걸쳐 작업한 드로잉ㆍ설치ㆍ회화 등 60여점을 일일이 설명하는 열정을 보였다.
화가인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슈라이어 부사장은 4살 때 그린 동물원 드로잉부터 아내의 웨딩드레스 패턴을 그린 흑백 그림, 독일의 고향마을 근처에 있던 작은 공항에 대한 기억과 취미인 경비행기와 봅슬레이 등에 대한 다양한 유화작품도 선보였다.
일상적 소재를 즐겨 그리는 그가 의외로 자동차를 그리지 않는 것에 대해 슈라이어 부사장은 "나에게 예술은 일에서 느끼는 압박감을 해소하는 탈출구이기도 하기 때문에 자동차는 안 그리는 편"이라며 "물론 나중에는 자동차가 드로잉 같은 작품에 등장할 가능성도 있지만 오히려 자동차는 다른 방식ㆍ다른 형태로 회화에 영감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첫 개인전을 고국 독일이 아닌 한국에서 열게 된 것에 대해 "한국을 오가며 일한 6년 동안 무척 바빴는데 그 와중에 정의선 부회장과 개인적인 얘기를 하면서 내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있었다. 정 부회장이 개인전에 대한 아이디어를 먼저 내놓았다"며 "나를 자동차디자이너로만 알고 있는 한국분들에게 나의 인간적 면모를 보여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싸이 톰블리와 한국작가 서도호를 좋아한다는 슈라이어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한국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기도 했다. 또 담양 소쇄원에서 영감을 받은 설치작품을 지난 2009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 선보이기도 했었다.
그는 "최근 경주를 다녀왔는데 갈 때마다 느끼지만 왕릉의 곡선이 매우 흥미롭다. 전통 도자기의 곡선도 그렇고 현대 건축도 전통과는 대조적이면서도 흥미롭다"며 "(디자인 작업에서)한국의 영향을 피할 수 없고 나에게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작품에 적힌 'No guts, no glory(배짱이 없으면 영광도 없다)'라는 문구에 대해서는 오래된 전투기에서 우연히 발견한 문구라고 했다.
"'배짱이 없으면 영광도 없다'는 말이 그 조종사에게도 중요했겠지만 오늘의 제게도 중요합니다. 일하는 데 가장 큰 모험(risk)은 아무런 모험(risk)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매 순간 작업할 때도 모험을 감수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해야 남보다 앞서가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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