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한 감정을 주고받은 적 없는 이복동생 신하정이 강에서 익사체로 발견됐다. 동생의 죽음을 수습하던 언니 신기정은 동생이 남기고 간 통화 내역에 수차례 찍혀 있는 한 사람의 번호를 발견하곤 그의 뒤를 밟는다. 생의 마지막 순간, 동생이 간절히 만나려 했던 여인 윤세오를.
윤세오는 가스폭발 사고로 아버지를 잃는다. 윤세오의 다단계 빚을 감당 못 해 스스로 가스관을 잘라 목숨을 끊은 아버지를 떠올리며 윤세오는 누군가를 찾아 나선다. 아버지를 찾아와 빚을 갚으라고 위협하던 남자 이수호를.
가족의 예기치 못한 죽음을 계기로 만나는 두 사람. 소설은 두 사람의 만남을 돌고 돌아 책의 말미에 성사시킨다.
흥미로운 점은 신기정과 윤세오의 감정 변화다. 신기정이 윤세오의 존재에 다가설수록, 윤세오가 이수호의 뒤를 쫓으며 복수에 가까이 다가설수록 두 사람의 슬픔과 그리움, 죄책감의 밀도는 더 짙어진다. 동생이 사라졌을 때, 아버지를 잃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렸어야 할 바로 그 감정이 긴 여정 끝에 비로소 밀려온 것이다. '그것이 애도의 첫 번째 순서였다.'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오랫동안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유다.
한 점이 다른 점에 가 닿고자 하는 '안간힘'으로 그려지는 선. 이 '선(線)의 법칙'은 인간적인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선(善)의 법칙'으로 연결된다. 시종일관 건조하리만큼 덤덤한 문체와 묘사가 주는 울림이 인상적이다.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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