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 업체인 A사는 지난 2008년 당시만 해도 사원·대리의 비중이 51%나 됐다. 하지만 5년이 흐른 지난해 말 이 비중은 33.5%로 확 줄었다.
반면 과장과 차장을 합친 비중은 37%에서 51.4%로 14.4%포인트나 급증했다. 부장 역시 9.1%에서 12.2%로 3%포인트 이상 늘어났다. A사의 한 관계자는 "장기불황은 회복될 기미가 안 보이고 인건비 부담은 갈수록 커지면서 신규 채용 확대는 꿈도 못 꾼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국내 기업의 '고령화'는 비단 A사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국내 대다수 기업이 A사처럼 서서히 '역피라미드형 구조'로 나아가고 있다.
실제로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1999년 40.1세이던 근로자 평균 연령은 지난해 44세까지 올라갔다. 이에 따라 기업을 옥죄는 인건비도 폭증하는 추세다. 2013년 7월 기준 5인 이상 사업장의 총 인건비는 약 47조680억원으로 2009년 동월(35조430억원) 대비 34.5% 이상 급증했다.
◇성장 약화 부르는 기업 고령화=이처럼 기업을 압박하는 인건비 부담은 자연스레 신규 채용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 가운데 293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1.9%만이 올해 대졸 신규 공채를 진행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응한 기업의 18.8%는 올해 신입사원을 아예 뽑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으며 나머지 29.4%는 채용계획이 불투명한 상태다.
또 내년에 신입사원을 뽑겠다고 밝힌 152개 기업의 총 채용규모는 1만4,378명이다. 이는 지난해 신입사원 채용규모(1만4,545명)보다 1.1% 감소한 수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국내에서 신규 채용을 꺼리고 있으며 상당 부분이 경력직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며 "이렇다 보니 고령화가 더욱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고위직 수 증가→인건비 부담 가중→신규 채용 감소→인적 구조 고령화'의 악순환은 필연적으로 성장동력 약화를 야기한다.
이에 따라 한국 경제에도 곳곳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는 실정이다. 실제로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1년 이후 한국 경제 성장률은 신흥 개발도상국은 물론 전세계 경제 성장률보다도 뒤떨어지는 상황이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은 "과감한 신규 채용을 통해 젊은 피를 대거 수혈해야 할 시점"이라며 "인적 구조의 혁신과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임금체계 개편도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한 관계자도 "베트남만 가도 인건비가 한국의 10분의1"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내 기업에 신규 채용을 늘리라고 강요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정년연장·통상임금 등 곳곳에 암초=인적 구조의 변화만으로 기업의 인건비가 불과 4년 만에 35%가량 급증한 가운데 앞으로 기업들이 추가로 감내해야 할 인건비 부담을 고려하면 상황은 더욱 암담하다. '통상임금 확대'와 '정년연장'이라는 결정적인 현안이 눈앞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정부가 관련 법 개정 절차를 준비하는 가운데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따라 기업 인건비는 연간 최대 8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경총은 전망하고 있다.
김동욱 경총 기획홍보본부장은 "일시적으로 빠져나가는 현금이 그 정도에 달한다면 신규 채용 여력은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년연장 역시 기업들에는 크나큰 부담이다. 지난해 4월 국회에서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이 통과하면서 당장 오는 2016년부터 300인 이상 전 사업장에서 60세 정년 의무화가 일제히 시행된다. 1년 뒤인 2017년부터는 300인 이하 사업장에도 확대 적용된다. 김 본부장은 "정년연장을 앞두고 임금단체협상에서 어느 정도 수준까지 임금피크제를 적용하느냐에 따라 기업 인건비 증가규모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재계는 이에 따라 임금피크제가 정년연장에 따른 막대한 기업 부담과 신규 채용 기피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입장이다.
경총은 이의 일환으로 모델을 제시했다. 이 안에 따르면 기존의 정년 2년 전부터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임금을 낮춰 지급하는 1안과 기존의 정년 이후부터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2안으로 구성됐다.
국내 대기업에서 가장 많이 채택한 57세 정년을 기준으로 1안을 적용하면 56~57세는 피크임금 대비 85%를 지급하고 58세 이후에는 75%부터 60%까지 순차적으로 낮춰 지급하게 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