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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산책] 조선 상업중심지 종로1가

황원갑 소설가·역사연구가


황토마루였던 세종로 네거리에서 종루(鐘樓)가 있던 종로 네거리까지 오늘의 종로1가 일대는 조선왕조 초기부터 가장 번화한 상업의 중심지 운종가(雲從街)였다. 운종가가 전통적 상가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태종 12년(1412)부터 2년 반 동안에 걸쳐 공랑(公廊)을 지어놓고 상인들로 하여금 상업에 종사토록 하면서부터였다. 이것이 바로 시전(市廛)이다. 광화문에서 볼 때 왼쪽 미국대사관·교보빌딩 등이 들어서 있는 자리에는 의정부·이조·예조호조·한성부·기로소가 있었고 오른쪽 정부청사·세종문회회관 자리에는 중추부·사헌부·병조·형조·공조가 있었다.

의정부를 비롯한 육조 관아와 함께 태종 7년(1397)에 설치된 종루는 도성 안에 인정(人定)과 파루(罷漏)를 알리는 종을 장치한 누각이다. 운종가는 종루십자가로도 불렀고 종로라는 이름도 종루가 있다 해서 비롯된 것이다.

시전 행랑이 처음 세워진 것은 태종 12년 4월. 오늘의 종로1가 광화문우체국 북쪽 청진동 입구에 있던 혜정교에서 창덕궁 동구까지 좌우에 800여 간의 행랑을 건설한 것이 시초였다. 이렇게 조성된 행랑은 종로 네거리를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남대문까지, 동쪽으로는 동대문까지, 서쪽은 혜정교까지, 동북쪽으로는 돈화문까지, 서북쪽으로는 광화문까지 약 3,000간에 이르렀다. 특히 혜정교에서 종루에 이르는 운종가는 조선왕조 500년 동안 가장 번화한 상가지대였고 여섯 가지 대표적인 시전인 육의전(六矣廛)도 이 운종가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만기요람에 따르면 육의전은 비단가게인 선전, 무명가게인 면포전, 모시·베가게인 저포전, 명주가게인 명주전, 종이가게인 지전, 생선가게인 어물전 등으로 이들은 조정에서 필요한 물화를 조달하는 대가로 특정 상품의 독점판매권을 보장받았다.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인구가 늘어나고 생활 반경이 넓어지자 막강한 상권(商權)을 유지하던 종로의 상권(商圈)도 위협받기에 이르렀다. 농수산물·땔감을 비롯한 지방의 물화가 쉴 새 없이 한강·노들강·용산강·마포강·서강 등 5강을 통해 서울로 유입됨에 따라 자연히 객주·여각이 그 길목에서 발달 성장했고 객주 여각들은 그렇게 축적한 부를 기반으로 차츰 사대문 안까지 진출해 새로운 상가를 형성했다.

1898년 서대문-종로-동대문-청량리를 잇는 전차가 놓이고 1900년에는 종로-남대문-원효로4가를 잇는 전차가 놓임으로써 서울의 모습은 근대화로 더욱 다가섰다.



1894년 갑오개혁 때 전통적인 육의전의 특권이 철폐되고 정부의 적극적인 상공장려정책에 따라 각종 기업체가 생겨나게 되자 종로도 살아남기 위해 변신의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거세게 불어 닥친 상업 자유화의 바람 앞에 전통적 육의전을 중심으로 한 시전상조합은 와해돼버리고 말았다.

당시 종로를 중심으로 한 시전 출신 거상들로 백윤수·김윤면·김태희·장봉재·최윤석·장두현 등이 있었다. 이들은 주로 종로1가 광교 일대에서 견직물과 면포를 팔던 상인이었다. 특히 백윤수·김윤면은 배오개의 객주 출신 박승직과 함께 1905년의 공황기를 살아 넘겨 일제 말기까지 민족기업을 이어나간 끈질긴 상혼의 주인공들이다. 8·15광복 직후인 1946년 서울시가 특별시로 승격되면서 일제 잔재를 없애기 위해 통이니 정목이니 하던 일본식 지명을 우리 말 이름으로 하나하나 고쳤다. 광화문통은 세종로가 되고 종로통 1정목은 종로1가가 됐다.

면포전·저포전·사기전·백목전·전옥·수진방·명주전이 성시를 이루던 그 거리의 모습은 이제 종로1가에서 찾을 길 없다. 무상한 세월의 흐름과 개발, 재개발의 되풀이 때문이다. 혜정교도 광통교도 사라졌다.

종각 뒤 관철동 45번지 일대는 그 옛날 종이가게가 몰려 있던 지전동. 현재 20여개의 주단상점이 500년간 종로의 상권을 지켜왔던 옛 시전의 명맥을 가냘프게나마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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