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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한산대첩을 보는 듯 했다. 학익진을 펼치며 월등한 수의 적선을 효과적으로 격파해나가 줄곧 수세적이었던 전쟁의 흐름을 전환시킨 전투.
경기 초반은 정규군과 의병의 싸움을 연상시켰다. 정신력이 충만한 의병은 무기와 병법을 제대로 갖춘 정규군을 상대로 온 몸을 던져 공격을 막아냈다. 경고를 이미 세 차례나 받은 태극전사의 얼굴 하나하나에는 굳세지만 경직된 의지로 무장되어 있었다.
희생 많던 경기가 한산대첩으로 바뀐 것은 박주영의 발에서 비롯됐다. 거북선이 전후좌우로 둘러싼 적선의 응전을 허용하지 않고 상대의 심장을 향해 돌진하듯이 수비수 4명을 홀로 따돌리며 골 네트에 공을 쏘아 넣었다.
단순한 축구 한 경기를 조선과 왜국간의 전쟁으로 비유하는 것이 지나치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전날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소식이 선수진과 감독에게 알려졌다면 한국팀의 부담은 그 동안의 한일전보다 훨씬 컸을 것이다. 쐐기골을 성공한 후 구자철이 선수들과 함께 관중석을 향해 외친'만세삼창'에 그 부담의 정도를 감지하고도 남았다.
일본 자민당 의원들의 울릉도ㆍ독도 방문시도에 이어 국제적으로도 지탄받고 있는 일본군위안부 강제 동원의 진실을 호도하고자 위안부소녀상 옆에 말뚝을 박는 파렴치한 일본인이 있는가 하면, 벌써 수년째 방위백서에 독도가 자국영토라고 선언하는 일본의 작태가 나날이 도를 더하고 있는 때다.
브라질전을 적정선에서 포기하고 원래 출전목표인 4강 진출의 대미를 장식하고자 전력을 집중한 홍명보 감독의 냉정한 판단과 그 동안의 준비에 찬사를 보낸다.
'죽기살기로 했더니 졌고 죽기로 했더니 이겼다'는 유도의 김재범 선수, 현격한 실력 차로 금메달을 맞춘 양궁의 오진혁 선수, 자기 이름을 딴 기술로 금메달을 개척한 체조의 양학선 선수, '멈춰버린 1초'로 한 시간 동안 펜싱경기장에서 울음으로 세계에 억울함을 호소했던 당당한 신아람 선수, 바벨에 입맞춤하고'아름다운 은퇴'를 선언한 역도의 장미란 선수, 1위와 큰 점수차이로 불가능해 보이는 금메달을 차가움과 끈기로 자기 것으로 만든 사격 2관왕 진종오 선수 등등 진정 대표로 부르기에 손색없는 런던올림픽 한국선수단의 노고에 국민 모두가 응원을 함께했다.
정치의 계절 2012년, 국내 다른 분야의 대표급 전문가들도 세계무대에서 겨루는 국가대표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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