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유난히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다들 한 분쯤은 있습니다. 풋풋한 첫사랑의 대상이었던 교생 선생님일 수도 있고 유독 엄했던 담임 선생님일 수도 있죠. 미움, 애틋함, 그리움 등 기억과 함께 얽힌 감정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색을 띕니다. 내일은 ‘스승의 날’ 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워주셨던 ‘내 인생의 선생님’은 어떤 색으로 남아 있나요?
나이가 어릴수록 몸의 상처가 아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짧습니다. 30대가 아무리 노력해도 10대의 피부 탄력을 따라갈 수 없는 것처럼 젊을수록 재생력과 복원력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몸과는 다르게 마음의 상처가 아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어릴수록 더딘가 봅니다. KBS 수목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주인공 김현숙(채시라 분)은 고교 시절 목도리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학교에서 퇴학을 당합니다. 그가 당한 억울한 감정은 몇 십 년이 지나도 색이 바래거나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긴 세월 동안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다니고 있었죠. 당시 그의 집안 사정은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상실감으로 인해 어려웠습니다. 선생님은 우등생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목도리 도난 사건의 범인이었던 이사장 딸 윤미숙의 말이 훨씬 설득력 있었죠. 선생님은 김현숙이 ‘역시 그럴만하다’는 식으로 사건을 단정 짓고 맙니다. 훗날 김현숙은 우연한 계기로 자신을 핍박했던 선생님과 함께 인터뷰를 통해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고, 퇴학당했던 학교로부터 명예 졸업장을 받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물론 개인으로서는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은 셈이지만, 지나온 시간 동안 상처받은 시간만큼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이니까요.
현숙의 선생님은 나름의 판정 기준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현숙을 ‘중간에 못 미치는 별 것 아닌 학생’이라고 성적을 기준으로 평가한 것을 보면, 사람에 대한 분명한 분류를 가진 교사였던 것이죠. 그러나 성적과 경제적 순으로 우수한 학생을 환대하고 그렇지 못한 이를 차별하는 행태는 한 학생을 아무런 조사 없이 범죄자로 몰고 가게끔 하는 폭력성을 띄기도 했습니다. ‘저 아이는 못 살기 때문에 목도리를 훔칠 동기가 분명할 거야’ 라는 추론처럼 말이죠. 어쩌면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항상 저지르는 행태인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어떤 분들은 땅에 떨어진 교권을 회복해야 한다며 교사들의 인권이 보장되고 있지 않음을 개탄합니다. 다른 쪽에서는 아이에게 벌을 주다가 정도를 넘어서 육체적 상처를 입히기까지 한 막장 교사에 대한 영상이 인터넷에 돌기도 합니다. 자기 자신이 어떻게 제자에게 권위를 회복해야 할 지 모르는 이들에게 무한한 사명감을 요구하는 일이 무리인 걸까요. 한때 교육학을 전공했던 기자는 교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지 잘 압니다. 더군다나 학생 개개인의 삶을 배려하고 저마다 맞춤화된 관심을 베푸는 것은 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스승’이라면, 자신들이 상대하고 있는 사람은 계산과 처세에 빠른 성인이 아니라 사고 체계가 만들어져 가고 있는 ‘아이들’이라는 점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각인된 기억은 평생 영향을 미친다는 당연한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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