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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一日一識] <8> 지갑을 여는 마법 “그래, 그땐 그랬지”

현대차가 진행중인 ‘브릴리언트 메모리즈’ 캠페인. 고객의 추억을 예술작품으로 만들어준다. 조형작가 칸의 소파(그랜저 시트·왼쪽), 아티스트 그룹 에브리웨어의 사진 감상대(싼타페 핸들·부품)

/사진제공= 현대차

“그래, 그땐 그랬지” TV 광고를 보던 이 부장이 엷은 미소를 짓습니다. 소중하게 간직해온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습니다. 그는 부하직원이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 ‘내가 왕년에는’으로 시작하는 이야기 보따리도 풀어놓습니다.

팍팍한 삶을 사는 현대인에게 즐거운 추억은 ‘만병통치약’과 같습니다. 손해 보지 않기 위해, 또는 더 똑똑하게 살기 위해 논리와 이성을 강조하는 사회 속에서 마음껏 감성에 젖을 수 있는 순간을 선물하기 때문입니다. 감성이 자극되면 일반적으로 구매절차도 간소화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면서 평소보다 더 깐깐하게 물건값을 비교할 수 있는 소비자는 많지 않습니다. 여행지에서는 근사한 장식품이었는데 막상 집에 와서 보니 자리만 차지하는 쓸데없는 물건으로 전락한 잡동사니 한 두 개쯤 다들 있으시죠? 당시의 분위기, 설렘이 사라지고 나면 분명 같은 상품인데도 한없이 초라하게만 느껴지는 건 비단 필자만의 경험은 아닐 겁니다.

재닌 라살레타 교수와 콘스탄틴 세디키데스 교수 등의 연구에 따르면 소비자의 향수를 자극할 경우 실제로 지불 의사 금액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진은 생일 케이크 앞에서 촛불을 끌 준비를 하고 있는 아이와 곁에 선 부모의 사진을 보여주고 절반의 참가자들에게는 “과거의 특별한 순간을 기억하세요. 당신의 어렸을 때 기억을 떠올려 보세요” 라고 이야기하고, 다른 절반의 참가자들에게는 “다른 사람과의 특별한 순간을 생각해 보세요. 오늘 시작해서 미래까지 계속될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보세요”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후 콜라, 우산, 셔츠, 저녁 식사 등 여러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얼마까지 지불할 생각이 있는지 묻자 과거를 상기한 참가자들이 더 후하게 값을 치르겠다고 응답했습니다. 이 같은 성향은 현실에 대한 만족도가 낮을수록 즉, 지금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화려한 과거를 가지고 있을수록 강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누구나 심리적으로 편안해 질 수 있는 일종의 ‘안전구역’이 필요한데 앞서 언급한 이 부장처럼 ‘찬란했던 왕년’을 읊는 경우는 심리적 안전구역에 더욱 강한 집착을 보이기 때문이죠.



높은 광고 효과가 입증되면서 많은 기업들이 이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모습이 종종 발견됩니다. 현대자동차는 차 부품과 가족, 연인이 함께한 순간을 연결해 특별한 작품으로 선물하는 ‘브릴리언트 메모리즈’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차가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의 소중한 순간을 늘 함께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특별한 의미를 부각하는 것입니다. 폐차를 앞둔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구매 유도를 염두에 뒀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감동 전달로 인한 브랜드 충성도, 좋은 이미지 구축에 무게가 실린 것으로 보입니다.

기업이 장삿속으로 ‘추억 팔이’를 한다고 폄하하거나 비난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바쁘고 지친 일상 속에서 이 부장처럼 잠깐이나마 행복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로 인해 기쁨을 느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값어치 있는 일 아닐까요.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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