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토요 산책] 국보, 번호로부터 해방시켜라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사람과 사물에 관리를 위해 번호를 부여한다는 것은 달리 생각하면 매우 비인간적·반문화적이다. 특히 우리나라 문화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북한과 같이 번호를 부여하는데 그 역사적 배경이 사뭇 치욕적이다.

제2대 조선 총독으로 강압통치를 시행한 것으로 악명 높은 하세가와 요시미치는 1904년 9월부터 1908년 11월까지 조선군사령관으로 있으면서 숭례문 파괴를 시도했었다.

일제 잔재 그대로 계승한 지정 번호

숭례문과 흥인지문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두 선봉장인 가토 기요마사(1562~1611)와 고니시 유키나가(?~1600)가 각기 이 문을 통해 도성에 입성해 서울을 함락시킨 자랑스러운 전승기념물이라 해서 보존된 반면 서대문(돈의문) 등 다른 성곽은 일본왜구의 승리기록을 갖추지 못해 완전 철거되는 비운을 맞았다. 이후 일제에 의해 숭례문은 '조선고적1호'로 지정됐고 해방 후 아무런 역사적 사실이나 문화재적 가치에 대한 조사나 연구 없이 일제 잔재를 그대로 계승해 숭례문을 국보 1호, 흥인지문을 보물 1호로 지정하게 됐다.

이러한 사실은 국내 학자에 의해서 밝혀진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일본 도호쿠대의 연구원인 오카 히데루가 2003년 '한국사론'이라는 연구 논문을 발표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일부에서 1962년 우리나라도 문화재보호법을 두면서 국보·보물제도를 도입한 만큼 일제 잔재가 아니라고 하지만 일본의 문화재보호법을 바탕으로 했고 일제가 정한 국보·보물 순을 그대로 존치시켰기 때문에 일제 잔재를 부정하기 힘들다. 반면 일본은 국보 1호가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으로 알려진 교토 광륭사의 반가사유상이란 것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아니면 모든 국보는 다 소중하다는 생각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번호제를 폐지했다.



법률적으로는 문화재 지정이 법령에 의해서만 가능한데 문화재보호법 그 어디에도 문화재를 지정하며 번호를 부여하라는 법조항은 없다. 또 번호는 관리번호에 불과하다고 하는데 문화재보호법에 관리번호라는 규정도 없다. 국보 숭례문, 국보 석굴암, 국보 불국사라고 하면 관리가 안 된다는 무슨 근거라도 있다는 것인가.

문화적 가치로 봐도 숭례문이 국보 1호가 돼야 할 가치와 동기부여가 미약하다. 냉정하게 본다면 숭례문은 봉정사 극락전처럼 가장 오래된 건축물도 아니다. 한국 건축사에 있어서 부석사 무량수전이나 수덕사 대웅전, 화엄사 각황전에 견줄만한 건축 양식적 가치면에서도 제1호 가 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그렇다고 건축의 규모면에서 경복궁의 근정전이나 경회루처럼 웅대한 것도 아니다.

문화재 다양성 존중 위해 폐지해야

정서적으로 본다면 무엇보다 화재로 2층 문루가 70% 이상 소실된 것과 해외 토픽 감의 부실복원으로 온 국민에게 치욕과 상처를 줬다는 점에서 반드시 우리나라 국보 번호부여제도는 폐지돼야 할 것이다. 50년 이상 번호를 부여했기 때문에 존치해야 한다는 명분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숭례문이 불탄 후 분출된 일부 지나치고 냉정하지 못한 감정이 시간이 흐르면서 사그라지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국보 제1호 숭례문을 지나치게 신격화·단순집단화돼가는 사회병리현상을 두고만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이 있다. 1호의 존재에 몰입하기보다 다양성의 존중을 위해서라도 모든 국보를 번호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