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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칼럼] 인권과 평화의 지킴이, ‘평화의 소녀상’
정세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일거수일투족,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은 우리 사회에서 고통 받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었고 마음의 위로가 되었다. 대통령과 정부조차 보듬기 버거워하고 있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향해 내민 교황은 손길은 정치인의 한 사람인 필자에게도 무언의 메시지가 되어 다가왔다.
교황의 방문은 우리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경사스러운 일이었다. 이러한 교황의 한국방문을 조금은 못마땅한 시선으로 숨죽이며 지켜본 나라가 있다. 교황이 자국을 방문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교황이 한국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특히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던질지 몰라 안절부절 했던 나라, 바로 일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마지막 일정으로 열린 명동성당 미사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맨 앞자리에 앉게 하였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빨리 해결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호소하는 김복동(89)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비롯한 모든 여성들이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해방되기를 염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희망 나비’ 배지를 교황에게 전했고, 교황은 할머니에게 받은 그것을 자신의 제의에 달았다. 교황은 일본정부가 안절부절 했던 위안부 메시지를 온 몸으로 전달한 것이다.
교황은 방한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전세기 안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군에 의해 끌려가 노예처럼 착취당했다”, “그런 고통 속에서도 존엄성(dignity)을 잃지 않았다”며, 이번에는 명확하게 구두로 ‘일본군 위안부’ 메시지를 다시 한번 전달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했던 김학순 할머니는 이미 고인이 된지 오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되어 있던 237명의 할머니 가운데, 현재 살아계신 할머니는 54명에 불과하다. 할머니들의 평균연령은 88세가 넘고, 80세 이하의 할머니는 한 분도 안계시다. 시간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인 일본정부는 이 문제가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묻혀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위안부의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부정하여 일본정부 책임의 흔적을 지우려 안간힘이고, 위안부를 기리는 평화비(평화의 소녀상)와 기림비 등을 건립하려는 세계 곳곳의 인류애와 양심을 덮으려 추악한 돈 잔치를 벌이고 있다.
일본 우익은 위안부라는 자국의 씻을 수 없는 국제적 범죄, 인도적 범죄를 어떻게든 덮어보겠다는 발상으로 ‘평화의 소녀상’에 말뚝테러까지 자행했다. 위안부를 기리는 상징물을 통해 자신들의 과거 악행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조차 두려웠기 때문이리라.
현재 국내외에서 기림비와 평화비가 곳곳에 조성되고 있다. 그 자체가 살아있는 역사이고 교육의 현장이기 때문에 많은 지자체와 외국에서도 동참하고 있다. 2010년 최초의 기림비가 미국 뉴저지주의 펠팍 팰리세리즈팍 공립도서관에 설치된 이후, 미국에는 모두 3곳에 ‘평화의 소녀상’이, 8곳에 기림조형물이 세워졌다. 한국에도 일본대사관 앞을 시작으로 통영에 정의비가 거제, 고양, 성남, 수원, 화성에는 ‘평화의 소녀상’이 헌정되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한 분, 두 분 세상을 등지고 계시지만, 할머니들의 혼은 ‘평화의 소녀상’이 되어서 우리 곁에 다시 돌아오고 있다. 인권과 평화의 지킴이가 되고 있는 ‘평화의 소녀상’이 더 널리 세워질 수 있도록 애정과 관심이 필요한 때다. 그리하여 대한해협 건너 일본 열도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지는 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비로소 일본을 용서할 수 있을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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