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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내부진통 끝에 내놓은 경제민주화 최종 내용은 화려한 '정치구호'를 배제하고 '실행 가능성'에 방점을 찍은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대기업집단의 기존 순환출자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ㆍ금지한 야권의 경제민주화 대신 의결권을 인정해 차별성을 부각시켰다.
의결권이 제한되면 해외기업의 기업 인수합병(M&A) 위험에 노출될 수 있고 경영권 방어에도 수조원에서 수십조원의 자금이 필요한 만큼 기존 의결권에 대해서는 소급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대기업에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데 드는 비용을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사용해줄 것을 재계에 당부했다.
박 후보는 16일 여의도 당사에서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하며 "기존 순환출자 의결권까지 제한한다면 기업이 큰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기업에 몸담고 있는 직장인들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다"며 "경영권 방어에 들어갈 막대한 비용을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쓰도록 하는 것이 국민경제에 더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정치적 당위성을 앞세우기보다는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는 현실을 감안해 '경제실리'에 무게를 둔 것이다.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강경파인 새누리당 내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 주장한 ▦대기업집단법 제정 ▦재벌총수 국민참여재판 도입 ▦계열사 지분조정명령제 ▦계열사 편입심사 등을 최종 공약에서 제외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다만 대기업집단법 제정은 중장기 과제로 검토하기로 단서를 달았다.
박 후보는 "대기업집단법 제정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세계적으로 선례가 거의 없고 현행 법체계와 충돌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있었다"면서 "집단법에 포함될 내용 중 필요한 부분은 개별법에 실효성 있게 반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경제주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경제민주화 정책 곳곳에 다양한 수단과 도구들을 포함시켰다. 금융ㆍ보험 계열사가 보유중인 비금융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은 현행 15%에서 장기적으로 5%까지 제한했고 자산 규모와 금융사 숫자 등이 일정요건에 달하면 중간금융지주회사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했다.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한도는 현재 9%에서 4%로 한정했으며 대주주적격성 심사를 현행 은행ㆍ저축은행에서 금융ㆍ보험회사로 대폭 확대했다. 이 같은 방안은 경제민주화 매파인 경실모 제안을 에누리 없이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최종안을 마련한 안종범 새누리당 의원은 "야권에서 3~4개의 공약이 제외됐다고 해서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실천의지가 약해졌다고 공격하는 것은 '비판을 위한 비판'에 불과하다"며 "왜곡된 대기업 지배구조와 경제질서를 교정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 방안이 가장 역점을 둔 것은 '공정거래 확립'이다.
그동안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간, 생산자와 소비자 간 관행처럼 자행됐던 불공정거래를 차단하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첫걸음이라는 판단이다.
'솜방망이' 처벌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한 것이 대표적이다. 박 후보 캠프의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은 "지금까지 공정위에만 부여됐던 고발권을 조달청장, 중소기업청장, 권익위원회 위원장, 감사원장 등에게 함께 주겠다는 것"이라며 "불공정거래를 차단할 수 있는 실효적인 수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더해 공정거래를 위한 보조수단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 ▦집단소송제 ▦사인의 피해금지청구제도 등도 못박았다.
또 새누리당은 대기업집단의 불법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재벌총수 횡령 등에 집행유예 금지 ▦경영자 중대범죄에 사면권 제한 ▦총수일가 부당이익 전액 환수 등을 도입했다.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소액주주의 사외이사 선임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 강화 ▦집중투표제ㆍ다중대표소송제 등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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