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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에서는 아시다시피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최근 서울중앙지법에서 나왔던 대학교 기성회비 반환 판결은 교육계와 법조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된다면 대학교들을 적지 않은 돈을 졸업생들에게 물어줘야 한다.
서울대와 부산대 등 국ㆍ공립대 소속 대학생 4,219명을 대리해 '기성회비 납부를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승소 판결을 받아낸 법무법인 정평의 하주희 변호사(37ㆍ사법연수원 39기ㆍ사진)는 판결 직후 이렇게 말했다.
옳은 말이다. 그가 언급했듯 이번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은 고등법원과 대법원을 거치며 얼마든지 뒤집어질 수 있다. 그러나 국ㆍ공립대 살림의 근간이 된 기성회비가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우리 사회에 남긴 파장은 무시할 수 없다. 당연히 기성회비를 내야 한다고 인식했던 이들도, 무조건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학교도 이번 판결을 계기로 수십 년간 이어진 관행을 새롭게 바라보게 됐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생소하게 여겼던 기성회비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시작은 지난 2010년 국정감사였다. 당시 국감은 기성회비가 국고로 편입되지 않는 점을 이용해 대학들의 '뒷주머니'로 변질됐다는 점을 지적했고 이 일이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움직이게 했다. 그들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에 소송이 가능한지를 물어왔다.
민변 회원인 하 변호사는 의뢰를 접한 당시에는 승리를 자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가능은 할 것 같다'는 의견서를 보냈다. 확신에 찬 대답은 아니었지만 학생들은 '반값 등록금'을 염원하며 원고를 모집했다. 하 변호사는 그 때를 "짧은 시간에 4,000명이 넘는 원고인단이 모여 관심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회상했다.
하 변호사는 재판부를 설득할 법리를 마련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도 기억했다. 모든 변론은 어렵겠지만, 그에게는 승소 판례가 없다는 사실을 극복할 근거와 설득력이 필요했다. 그는"법, 학칙 그리고 기성회 규약이 모두 혼재돼있고 누가 쓰고 징수하는 지 법적 근거가 확실치 않았다는 점에 놀랐다"며 "근본적인 구조가 정말 이상했다"고 말했다. 법대로 따졌다는 얘기였다.
첫 승을 거둔 지금 하 변호사는 1심을 준비할 때보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다. 우선 기성회비와 관련, 국가의 반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1심 판단을 바꾸기 위해 다퉈야 한다. 이 문제를 사적 단체인 기성회의 탓으로만 돌린다면, 학생들이 바라던 등록금 구조 개선은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다. 게다가 사회적 관심이 쏠리면서 소송의 판도 커졌다. 주도적으로 원고인단을 모았던 한국대학생연합은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기 위해 참여대학을 확대해 나갈 방침을 밝혔다. 또한 천문학적인 금액을 학생들에게 물어줘야 할 입장에 놓인 각 대학 기성회도 한층 예리한 법리로 맞설 것이다.
첩첩산중에 대처할 계획에 대해 묻자 그는 "학생들의 소송을 법률적으로 돕는다는 기본 입장은 변함없다"고 운을 뗐다.
"가장 중요한 역할은 법리적으로 더 깊이 있는 연구를 해서 대응하는 것이지요. 1심서 인정된 부분도 여전히 치열한 공방이 펼쳐질 겁니다. 할 일이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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