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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적 리스크 지구촌 뒤흔든다

우크라 상공서 말레이機 피격… 가자지구 지상전 돌입…

'G제로 시대' 美 영향력 줄어 곳곳 영토·종교 분쟁

금융시장 불안·투자위축 등 글로벌경제에도 파장


'세계의 경찰'을 자처했던 미국의 영향력 쇠퇴로 국제사회가 리더십 공백을 의미하는 'G제로' 시대에 접어들면서 지정학적 리스크가 연일 지구촌을 뒤흔들고 있다.

1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상공에서는 298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태운 말레이시아항공 보잉777(MH 17편) 여객기가 격추되는 사상 최악의 사건이 발생했고 '중동의 화약고'로 불리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는 지상전이 시작됐다. 4년째 내전을 겪어온 시리아에 이어 이라크마저 집어삼킨 전쟁의 불길은 중동지역 종교전쟁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는 중국과 주변 국가들 간의 영유권 분쟁으로 연일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다. 냉전이 종료된 지난 1990년대부터 압도적인 경제력과 정치·군사적 힘으로 안정적인 국제질서를 유지했던 미국의 힘이 약해지면서 그동안 눌려 있던 분쟁의 불씨가 잇따라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이 증폭되는 지정학적 리스크는 세계 경제에도 심각한 파장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떠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향하던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가 내전 중인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상공에서 미사일에 맞아 추락해 승객과 승무원 298명이 전원 사망했다. 민간여객기가 격추돼 발생한 사망자 수로는 역대 최대 규모인 대형 참사다. 미국과 러시아의 대리전으로 '신냉전' 우려를 고조시켜온 우크라이나 사태는 이번 사건으로 최악의 국면을 맞게 됐다. 또 이 항공기 격추가 친러 반군의 소행으로 밝혀질 경우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 역시 더욱 악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날 지구촌의 오랜 '화약고'로 알려진 중동지역에서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지상군을 전격 투입해 이스라엘과 이 지역을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중동지역은 이라크 수니파와 시아파 간 내전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까지 끌어들인 종교전쟁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는데다 4년째로 접어든 시리아 내전 장기화에 더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까지 더하면서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이처럼 최근 들어 지구촌 곳곳이 '지뢰밭'으로 변하고 있는 데는 과거 글로벌 패권국으로서 세계 각지의 문제를 조율해온 미국이 더 이상 힘 있는 '해결사'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세계적 정치 리스크 컨설팅 회사인 유라시아그룹의 이언 브레머 회장은 최근 비즈니스인사이더에 실은 글에서 "올해 국제사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지정학적 갈등 확산"이라며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이 약해진 가운데 누구도 그 자리를 메우지 않는 리더십 공백 상황, 이른바 G제로 세계가 이 같은 지정학적 불안의 근본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미국이 주도했던 국제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수정주의와 이슬람 분리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영유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중국과 일본, 동남아 국가들의 갈등도 날로 고조되고 있다고 브레머 회장은 지적했다.

불거지는 지정학적 리스크는 글로벌 경제에도 과거 어느 때보다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객기 격추와 가자지구의 지상전 돌입 소식이 연이어 전해진 이날 충격에 빠진 글로벌 금융시장은 크게 요동쳤다. 미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지수(VIX), 일명 공포지수는 전거래일보다 무려 32%나 급등한 14.54를 기록했다. 중동발 리스크에 국제유가도 급등해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8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1.99달러(1.97%) 오른 103.19달러에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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