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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퇴직고관 벽에 막힌 건보개혁

고액 연금소득자에 대한 건강보험료 부과 방침이 정부당국의 호언과 달리 희미해지는 것 같다. 보건복지부는 당초 다음달부터 연간 4,000만원 이상의 연금 수령자를 직장인 피부양자 자격에서 제외해 지역의보에 편입시키기로 했다. 그런데 최근 느닷없이 시행시기를 내년 초로 늦춘다며 여론수렴 과정이 더 필요하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오는 9월1일로 시기를 못박아 시행규칙에 대한 입법예고까지 됐던 정책이 막판에 무산된 배경이 어처구니가 없다. 고관 출신 퇴직공무원들이 연금에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이 부당하다며 정부 부처까지 동원해 반발하자 복지부가 두 손을 들어버린 것이다. 지난 6월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올 하반기부터 시행한다고 국민에게까지 발표한 사안이 이렇게 연기됐다.

우리 사회의 급속한 고령화 추세에 따라 건강보험 개혁은 시급한 국가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소득이 있는 곳에 보험료를 부과하겠다며 금융소득이 많거나 고가 부동산을 보유한 사람들도 빠짐없이 지역의보로 편입시켰다. 이것도 모자라 건보 재원 확충을 위해 세금을 늘리는 방안까지 검토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전체 피부양자의 0.06%(1만2,000명)인 퇴직고관들의 입김에 좌우돼 주요 개혁정책을 흐지부지해버린다면 국민에게 건보개혁에 동참해달라고 요구할 명분이 없다. 우선 똑같은 연금 수급자라도 지역의보에 편입돼 꼬박꼬박 건강보험료를 내고 있는 많은 국민들의 분통이 터질 일이다. 퇴직고관 역시 노후 생활인으로서 갑자기 늘어나는 보험료가 적지 않은 부담이겠지만 그렇다고 나서서 저항과 반대 로비까지 할 일은 아니다. 고위공직자로서 나름대로 명예를 누리고 대우를 받으면서 국가와 국민에게 봉사해온 노블레스오블리주의 자세를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위관료들이 공직 철밥통 이기주의의 핵심 세력으로 오해 받게 될 것이다.

복지부는 소득세법 개정작업에 맞춰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하지만 그 정도로는 국민을 납득시킬 수 없다. 대선과 정권교체기에 결국 정책이 실종해버리고 말 것이라는 의심을 해소시킬 최소한의 구체적인 일정을 지금이라도 다시 내놓아야 한다. 사회 지도계층을 빼놓고서는 어떤 개혁정책도 추동력을 가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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