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폭락의 여파로 주요 산유국들의 플랜트 발주가 크게 줄어들며 국내 건설·플랜트 업계의 실적에 빨간불이 켜졌다. 유가 하락으로 재정위기에 직면한 석유수출국기구(OPEC) 산유국들이 원유·가스 등 플랜트 건설 계획을 연기하거나 취소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건설업계는 내년 산유국들의 플랜트 발주 감소 추세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해외수주 다변화 등 대책마련에 고심하는 분위기다.
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유가 하락에 따른 중동 산유국의 플랜트 발주 감소는 이미 건설업계의 해외수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국내 건설업계의 수주 '텃밭'으로 불리던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다. 해외건설협회가 집계한 결과 국내 건설사들이 올 들어 지난 11월까지 사우디에서 올린 수주액은 총 29억5,113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87억5,826만달러)의 3분의1가량으로 급감했다. 이에 따라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수주 1위 자리를 지켰던 사우디는 올해 순위가 아랍에미리트(UAE)와 베트남에도 밀리며 7위로 내려앉았다.
국내 업체가 중동 산유국인 카타르에서 따낸 일감도 크게 감소했다. 올 들어 건설업계의 카타르 수주액은 총 9억5,786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62%나 줄었다.
이처럼 중동 지역 산유국에서 수주한 공사가 크게 감소한 것은 유가 하락으로 재정수입이 줄어든 이들 국가가 원유·가스 플랜트 발주를 줄이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사우디 정부는 올해 건설투자 규모를 661억달러로 지난해보다 13%가량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최근 유가 폭락으로 산유국들의 재정압박이 심해지고 있어 관련 플랜트 발주는 더욱 위축될 것으로 우려된다. 현재 이라크·나이지리아 등 일부 산유국은 내년 재정지출을 줄이도록 예산계획을 수정하고 있다. 당장 정부 예산의 95%를 원유 판매 수입에 의존하는 이라크의 하이다르 압바디 총리는 11월30일(현지시간) 의회에 출석해 "유가 하락으로 현행 예산안을 폐기해야 하며 10일 내로 새 예산안을 편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라크 현지 매체는 이라크 정부가 애초 155조디나르(약 1,340억달러)였던 내년 예산을 48조디나르(약 414억달러)로 대폭 삭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우디 역시 균형재정 달성을 위해 유가가 배럴당 99.2달러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으로 현 유가 수준에서는 대규모 적자가 예상된다. 마수드 아메드 국제통화기금(IMF) 중동 담당 국장은 지난달 "사우디·오만·바레인은 내년에 적자재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원유 판매 수입에 재정의 75%를 의존하는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 나이지리아도 긴축재정에 들어갔으며 내년 재정지출을 최대 6% 줄일 계획이다.
국내 건설업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가 하락 시기에 중동 지역에서 프로젝트 발주 지연 및 취소가 잇따랐던 사례가 내년에도 재연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2008년 발주 예정이던 사우디의 얀부·주베일 정유공장, UAE의 아부다비 가스압축시설 프로젝트 등이 유가가 오름세로 돌아선 2009년 이후로 발주가 미뤄졌으며 2008년 말 기술제안서를 접수하려던 50억달러 규모의 카타르 알샤힌 정유공장 프로젝트는 무기한 연기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건설사들은 산유국들의 재정악화에 따른 플랜트시장 위축에 대비해 해외 진출 지역 및 공종을 다변화해 충격을 상쇄한다는 전략이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아직 유가 하락에 따른 실질적인 타격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내년에는 중동 지역 플랜트 수주가 눈에 띄게 줄어들며 해외수주 침체가 우려된다"면서 "중동 플랜트 시장이 위축되면 미국·캐나다 등의 셰일가스 플랜트 발주가 활발해질 수 있지만 국내 업계가 이들 지역에 진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다른 대형 건설사 관계자도 "내년 중동 지역 발주 축소가 불가피해 보이며 단순히 정유 플랜트뿐 아니라 발전·담수·화학 플랜트 등 다른 플랜트 발주도 감소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며 "중동 지역 업황 변화를 꾸준히 지켜보며 내년 사업계획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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