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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는 지난해 11월 정권을 차지한 직후 "시민ㆍ사회ㆍ경제 등 모든 면에서 덴마크를 존경한다"고 밝혔다. 최고 수준의 복지를 제공하면서도 견실한 성장을 거듭하는 북유럽 국가들에 대한 부러움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이다.
사실 같은 유럽 안에서도 스웨덴ㆍ덴마크ㆍ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은 유럽연합(EU) 회원국이면서도 그리스ㆍ스페인ㆍ이탈리아 등 남유럽과 정반대의 행보를 걸었다. 북유럽 국가들은 '무덤에서 요람까지' 책임진다는 대표적 복지국가이면서도 올 1ㆍ4분기 경제성장률이 스웨덴 0.8%(전분기 대비), 덴마크 0.3%, 핀란드 0.8%로 같은 기간 제자리 걸음에 그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평균 성장률을 모두 앞질렀다. 한 마디로 세계 최고의 복지와 성장을 동시에 달성해 두 마리 토끼 잡기에 성공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신(新)자유주의 물결 속에 잊혀져 가던 일명 '북유럽 경제모델'에서 위기 극복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북유럽 채권, 안전자산 등극= 이들 북유럽 3개국의 성공은 채권 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보통 북유럽에는 스웨덴ㆍ덴마크ㆍ핀란드에 노르웨이ㆍ아이슬란드가 포함되지만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는 유로존은 물론 EU에도 가입해 있지 않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스웨덴 10년물 국채금리는 1.59%로 유럽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1.58%)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지난해 스웨덴의 국내총생산(GDP)이 5,715억달러로 독일(3조6,286억달러)의 7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스웨덴에 대한 국채 투자자들의 신뢰가 얼마나 두터운지 실감할 수 있다.
덴마크 10년물 국채금리는 1.44%로 독일보다 오히려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덴마크 2년물 국채금리는 이달 초 한때 마이너스 단계로 진입하기도 했다. 투자자들이 프리미엄을 얹어주면서까지 덴마크 국채 매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얘기다.
북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유로존에 가입한 핀란드는 유로존 붕괴에 대한 우려로 국채 금리(10년물 기준 1.92%)가 다소 높은 편에 속하지만 스페인이나 프랑스보다는 현저히 낮다.
재정 건전성 면에서도 북유럽 국가들은 탄탄한 체력을 과시하고 있다. 유럽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스웨덴의 GDP 대비 국가 채무비율은 34.6%로 예상돼 EU 최저 수준이다. 81.2%로 예상되는 독일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덴마크와 핀란드의 채무비율은 각각 44.6%, 51.8%로 추산된다. 재정 여력이 든든하면 설령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해 글로벌 경기 전반에 침체가 찾아 오더라도 선제적 경기 부양으로 대응할 수 있다. 북유럽호(號)가 앞으로도 순항할 길을 열어놓은 셈이다.
◇체질 개선 성공한 북유럽= 북유럽 모델이 성공한 비결은 끊임 없는 자기 혁신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 3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성장과 복지를 동시에 추구하는 북유럽 경제모델이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앵글로색슨 모델(영국ㆍ아일랜드)이나 ▦성장을 강조하면서 사회보험 수준의 복지를 제공하는 대륙형 모델(독일ㆍ프랑스) ▦복지를 강조하는 지중해모델(이탈리아ㆍ스페인)보다 경제위기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지난 1월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의 최대 이슈도 북유럽의 성공 비결이었다.
이와 관련해 국제경제연구기관인 피터슨 인스티튜트의 안데르스 아스런드 수석 연구원은 최근 블룸버그에 기고한 글에서 "많은 사람들이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이 정부가 시장을 통제해 복지를 제공한다고 착각하고 있다"면서 "지금의 성공은 지난 20여년간 끊임 없이 이어진 개혁의 성과"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스웨덴의 경우 1990년대까지 복지 수준이 끊임 없이 확대되면서 세수 확보를 위해 세율을 끌어 올려 1990년에는 소득세가 최고 90%에 달했다. 하지만 1991~1993년 부동산 버블 붕괴와 금융위기가 동시에 겹치면서 같은 기간 GDP가 6%나 폭락했다. 또 1993년에는 GDP에서 공공 재정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71.7%까지 치솟으면서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11%를 기록했다. 지난해 그리스의 재정적자 비율이 9%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바짝 다가섰던 셈이다.
하지만 지난 1991~1994년 우파 정당의 칼 빌트 전 총리(현 외무장관)가 정권을 잡으면서 스웨덴은 본격적인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이후 좌파와 우파가 번갈아 가며 정권을 차지했지만 개혁의 칼날은 무뎌지지 않아 소득세율이 56.5%까지 낮아졌으며 ▦공기업 민영화 ▦퇴직연령 상향 조정 ▦각종 보조금 축소 ▦의료보험 정부 부담 감축 ▦석유세ㆍ담배세 인상 등 각종 재정 건전화 계획이 속속 도입됐다. 안데르스 보리 스웨덴 재무장관은 이 같은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해 파이낸셜타임스(FT)가 선정한 '올해의 재무장관'에 오르기도 했다.
북유럽 모델에서 특히 두드러진 성과는 복지 체계를 '일하는 복지'로 바꾸어 놓았다는 점이다. 국민을 상대로 가능한 복지를 위해 고비용 복지 구조에 손을 댈 필요성이 있다는 사실을 설득해낸 것이다. 이를 통해 북유럽에서는 노ㆍ사ㆍ정이 한데 모여 머리를 맞대고 각종 현안을 논의하는 한편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문화가 정착됐다. 이에 따라 불필요한 파업 등 각종 분쟁이 사라져 사회적 비용이 줄어 들었으며 정부는 퇴직연령을 상향 조정하는 등의 점진적 개혁 조치를 실시할 수 있었다. 또한 기업들은 연구개발(R&D)에 투자를 확대해 이윤을 확대하고 일자리를 늘리는데 앞장 섰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저성장ㆍ인구 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우리나라도 북유럽의 성공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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