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국가의 경제 제재로 사면초가에 몰린 이란이 시중은행 금리를 인상한 데 이어 고정환율제를 도입하는 등 '버티기 모드'에 돌입했다.
이란은 현재 물가상승률이 20%에 육박할 정도로 폭등하고 있는데다 EU 은행들마저 이란에 수출되는 곡물에 대한 무역금융을 중단하면서 경제난이 가중되고 있다. 하지만 이란은 이르면 1년 안에 '핵 보유' 카드를 쥘 수 있다고 판단, 당분간 인고의 시간을 각오할 기세다.
26일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란중앙은행은 28일부터 리알 달러 단일고정환율제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마무드 바마니 중앙은행장은 이날 국영TV에 출연해 "각종 상거래와 수입, 여행 환전 등에 1달러당 1만2,260리알의 고정환율이 적용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고정환율제 도입은 서방의 금융제재로 달러난이 극심해지며 리알화 가치가 폭락해 가뜩이나 불안한 물가를 더욱 밀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이란 통계청의 공식 물가상승률은 19.8%였지만 서민들의 체감 상승률은 이보다 2~3배가량 높다. 이란 소매상인들은 "지난해 6월 이후 계란값은 50% 이상, 버터값은 40% 이상 각각 뛰었다"고 전했다.
리알화 가치하락으로 시중은행에 돈을 묻어두려는 수요가 줄어든 것도 고정환율제라는 고육지책을 도입한 이유로 꼽힌다. 이란 정부는 이에 앞서 25일 현행 14%인 시중은행 금리를 21%로 올리기도 했다.
한편 EU는 이란산 석유의 역내수입을 금지한 데 이어 옥수수 등 곡물 수출까지 제한하는 등 제재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26일 보도했다. 이란은 세계 10대 옥수수 수입국이며 연간 450만톤의 곡물을 수입할 정도로 식량자급도가 낮아 '식품 제재'가 본격화할 경우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유럽의 한 곡물무역 업체 관계자는 "유럽 주요 은행들이 이란으로 향하는 곡물에 대한 무역금융을 중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통상관례상 수출입대금은 중개은행을 통해 결제가 이뤄지기 때문에 무역금융 서비스가 중단될 경우 수입선이 막히게 된다. 현재 이란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ㆍ우크라이나 등에서 주로 옥수수를 수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경제상황이 악화하자 이란은 서방국가에 대한 유화 제스처도 내놓고 있다. 관영 파스 통신에 따르면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이날 "핵개발과 관련한 대화를 재개할 용의가 있다"며 "우리가 협상을 기피한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란이 체제유지의 마지막 무기인 핵을 실제로 포기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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