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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생명 창립자인 대산(大山) 신용호(사진)의 기업가 정신을 기리는 추모의 밤 행사가 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 대산은 단체보험밖에 없던 시절 교육보험을 선보여 국내 보험산업의 발전을 주도한 보험업계의 스승이자 선구자와 같은 인물이다.
2003년 9월 8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대산의 삶을 관통했던 키워드는 다름아닌 '국민교육' '교육입국'이었다. 일제 치하였던 1917년 전남 영암의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나 제대로 된 배움의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대산은 최종 학력란에 '배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배운다'고 썼을 정도로 배움에 열정적이었다.
그가 교보생명의 전신인 대한교육보험주식회사를 설립한 것은 1958년. '교육이 민족의 미래'라는 신념으로 '진학보험'이라는 이름의 교육보험을 출시해 큰 인기를 끌었다.
교보생명은 이후 30년간 300만명의 학생들에게 학자금을 지급해 1960년 이후 경제개발 시대의 주역을 키워내는 데 일조했다.
1981년 광화문 네거리 금싸라기 땅에 교보문고를 세우고 1,000만명 독서인구 저변확대 운동을 펼친 것도 그의 의지였다. 당시 주위에서 최고의 상권에다 돈 안 되는 서점을 짓는 데 강하게 반대하자 대산은 "사통팔달 한국 제일의 목에 갈 곳 몰라 방황하는 청소년을 위한 멍석을 깔아주자. 와서 사람과 만나고 책과 만나고 지혜와 만나고 희망과 만나게 하자. 이렇게 습득한 각양각색의 곰삭은 교양들이 어떤 형태로든 나라를 위해 투자됐을 때 어찌 이 자리에 고급 상가를 들인 것에 비기겠느냐"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 밖에도 그는 대산농촌문화재단ㆍ대산문화재단ㆍ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 등 3개 사회공익재단을 설립해 공익사업을 펼쳤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83년 세계보험협회(IIS)에서 보험 노벨상으로 불리는 '세계보험대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했고 1996년에는 세계보험 명예의 전당에 헌정됐다.
대산이 씨를 뿌린 교보생명은 이제 총자산 70조원(지난해 말 기준), 당기순이익 5,723억원을 거두며 우량 보험사로 성장했다. 대표적인 수익성 지표인 자기자본이익률(ROE)은 2004년 이후 줄곧 대형사 중 1위를 기록할 정도. 2000년에 취임한 대산의 장남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선대의 경영철학을 이어받아 탄탄한 성장을 일궈가고 있다.
한편 추모의 밤 행사는 재계ㆍ학계ㆍ업계ㆍ유관기관 등 각계각층의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 의식, 추모시 낭송, 추모 공연 등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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