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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격 널찍한 의자에 발을 뻗고 등을 기댄 채 앞 좌석 뒤편에 장착된 LCD 모니터를 켠다. TV·영화·음악 무엇이든 선명한 화질과 또렷한 음질로 보고 들을 수 있다. 의자 상단에는 마치 곤충의 더듬이처럼 독서등이 달려 있어 바로 옆의 승객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혼자만의 독서를 즐길 수 있다.
최신 항공기의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 얘기가 아니다. 5년 후면 대한민국 영토 곳곳을 휘젓고 다닐 차세대 고속열차 얘기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시속 430㎞, 1시간30분대에 주파하는 새 고속열차 '해무 430X'가 지난 16일 경남 창원의 중앙역에서 열린 출고식 행사를 통해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2007년부터 5년간 총 931억원을 투입, 한국철도기술연구원과 현대로템 등 50여개 기관이 참여해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한 이 열차에는 동력집중방식인 KTX나 KTX-산천과 달리 동력분산형 추진시스템이 적용됐다.
목진영 철도연 책임연구원은 "KTX와 KTX-산천의 경우 맨 앞칸과 뒤칸에 동력 장치 때문에 승객이 탈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며 "동력분산형으로 개발된 해무 430X는 좌석 수가 16%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전했다.
새 고속열차 모델의 승객 친화적 특성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더 이상 승객은 급한 용무가 생겼을 때 '방금 지나쳐간 승무원'을 떠올리며 한참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의자마다 장착된 LCD 모니터에 승무원 호출 버튼을 누르면 만사형통이다.
깜박 잠이 들어 행선지를 지나칠까 마음 졸이며 휴대폰 알람을 맞추는 수고도 들일 필요가 없다. 승객의 행선지를 인식한 LCD가 도착 5분 전임을 친절하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화장실에 들어간 승객이 3분 이상 아무런 움직임이 없을 경우에는 스마트 센서가 이를 승무원에게 알려주는 기능까지 새롭게 마련됐다. 열차 가운데는 6개의 좌석이 유리문으로 밀폐된 가족실도 눈에 띄었다.
창원 중앙역과 진영역 사이 구간을 26분간 왕복으로 오간 출고식에서는 시속 150㎞까지만 속도를 냈다. 새마을호와 무궁화호도 달리는 선로인데다 성능 검증 등 제반 절차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새 열차는 오는 22일부터 부산고속철도차량기지에서 단계적으로 시속 30~40㎞씩 속도를 올려가며 본격적인 시운전 과정을 거친 뒤 올해 7월이나 8월 최고 속도 목표치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후 2015년까지 10만㎞의 주행시험을 완료한 후 2017년께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대전역과 동대구역에서만 열차가 정차한다고 가정할 때 승객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1시간36분만에 이동할 수 있다. 현재 2시간25분에서 무려 50분 가까이 단축되는 것이다.
사업을 총괄한 김기환 철도연 박사는 "차세대 고속열차 개발로 약 83.7%의 국산화에 성공했다"며 "최고 속도로 보면 프랑스(시속 575㎞), 중국(486㎞), 일본(443㎞)에 이어 세게 세 번째"라고 치켜세웠다.
출고식에 참석한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은 "하드웨어 선진화에 이어 KTX 경쟁체제 도입으로 소프트웨어 선진화까지 이뤄지면 우리나라도 세계 최고의 고속철도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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