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에 오르면 삶에 대한 자신감이 생깁니다. 등산 중에 잡념이 사라져 정신적으로 안정되고 체력적으로도 많이 좋아져요. 1년 정도 고생하면 사람에 따라 리지(ridge·바위능선 타기)도 합니다."
시각장애인 산악회 '사랑이 머무는 어울림 산악회'의 이종만(65) 회장은 요즘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토요일에 한번, 평일에 한번 주 2회는 산에 오른다. 물론 추운 겨울에도 오른다. 특히 북한산 칼바위 능선, 국망봉, 화악산, 명지산, 한라산 관음사 코스, 사랑도 산 등 바위 많은 산도 가본 곳이 수두룩하다. 지리산 화대종주(화엄사~대원사 무박 20시간 소요) 등 무박 종주산행도 여러 번 해냈다.
산악회 카페 가입 시각장애인은 80명, 산행을 도와주는 자원봉사자가 200여명. 자원봉사자는 회사원이 많지만 아주머니부터 자영업자 골고루 다 있다. 카페 공지를 보고 서울·수도권은 물론 충청도에서도 온다. 산행은 때에 따라 다르지만 자원봉사자를 포함해 20~40명이 나간다. 바위 많고 험해도 조금 늦게 진행할 뿐 일반인 산행과 같은 코스를 밟는다. 바위 많은 북한산은 월 1회는 간다. 숨은벽 코스, 진관사계곡, 향로봉 코스 등 안 가본 곳이 드물다. 실명한 후 산악회를 만들어 등산한 게 10년, 산악회 카페를 만든 지는 8년째다.
"장애인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따라 등산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눈이 안 보이는데 할 수 있겠나 싶었는데 해보니 불편할 뿐이지 큰 문제가 없다는 걸 알았어요. 봉사자 배낭에 바짝 붙어 가거나 손을 대고, 아니면 끈을 배낭에 묶고 보폭은 짧게 해 따라갑니다." 맨 처음 등산에 나서는 시각장애인은 덜덜덜 떨지만 1년 정도 하면 익숙해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중도 실명자는 그래도 괜찮은 편인데 어릴 때부터 실명한 사람은 등산 때 발이 안 놓여진다고 한다.
그는 40대에 입안·눈 등 몸 약한 부위가 허는 베체트병으로 실명했다. 맨날 약을 타다 먹었는데 등산을 얼마큼 한 후에는 약도 다 끊었고 혈압도 정상을 찾았다. 실명 직후 한 발자국도 못 다녔지만 지금은 지팡이 하나면 어디든 간다.
"산에 가면 위험해 몸 움직임에 몰두하기 때문에 궁상도 안 떨게 되고 시각장애인과 자원봉사하는 일반인을 만나 소통도 됩니다. 봉사자 중에 맹아학교 선생님이 있어 장애 관련 정보, 재활 정보도 얻어요. 침술과 안마도 배우고 안마사 사업정보도 얻어요. 특히 중간에 실명한 사람들이 좌절하는 경우가 많은데 등산을 하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산악회 카페도 상당 부분을 직접 관리한다. 센서가 컴퓨터에 달려 있어 새로운 내용이 들어오거나 자판을 치면 읽어준다. 물론 자판도 익혔고 검색도 다 한다. '등업(회원등급 올리기)' 등은 봉사자들이 도와주지만 감사인사, 어울림 공지 등 간단한 것은 직접 한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북한산 칼바위능선 일반인 산행 때 가려 했지만 데려가 주지 않아 산 잘 타는 봉사자들 데리고 술 사줘가면서 올라갔어요. 한두 번 해보니 별거 아니더군요. 시각장애인도 맘만 먹으면 할 수 있는데 너무 겁을 먹어 못하는 것 같아요. 도전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는 꿈이 있다.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수요일 도봉산에 가서 등산교육을 하는 것이다. 복지관 장애인 등산 프로그램은 좋은 길만 걷지만 산악회에서는 일반인이 가는 곳도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회장과 함께 어울림산악회 운영을 도와주는 자원봉사자 서천석(65)씨는 "도와주는 것 같지만 그런 개념은 아니고 자신의 삶에 촉진제가 될 수 있다"며 "불우한 처지에도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움직이며 긍정적으로 사는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