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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지적(地籍ㆍ토지의 위치ㆍ형질ㆍ소유관계ㆍ넓이ㆍ지목ㆍ지번 경계 따위를 등록해놓은 기록) 재조사 사업'이 시작됐다. 일제가 100여년 전 토지 수탈과 세금 징수를 목적으로 만든 아날로그 지적도를 우리의 첨단 기술로 정확하게 측량해 디지털화하는 사업이다. 지난해 국회에서 지적 재조사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고 지난주 국토해양부는 범정부적 추진 조직인 지적재조사기획단을 발족했다. 지적 재조사 사업에는 오는 2030년까지 총 1조2,000억원의 정부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첫해인 올해에는 전국 66개 지구 30만 필지를 대상으로 본격적인 재조사 측량이 시작된다.
1~2㎝ 오차 정밀 디지털 지적 구축
지적 재조사는 잘못된 국토정보를 바로잡을 뿐만 아니라 측량 기술에도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현재의 측량 방식과는 다른 최첨단 측량 시스템이 도입되기 때문이다. 바로 '네트워크 RTK(Real Time Kinematicㆍ실시간 이동 측량체계)'라는 새로운 측량 기술이다. 이것은 전국 72개 GPS 상시관측소(GPS 위성이 송신하는 신호를 실시간 수신해 임의 지점의 위치정보를 결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를 네트워크로 연결해 위치정보를 이동국 수신기에 전송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사용자는 GPS 수신기만 있으면 전국 어디에서나 실시간으로 1~2㎝의 정확도로 측량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근대적인 지적제도가 확립된 지는 벌써 100년이 지났지만 지적 측량 기술은 더디게 발전했다. 지난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일제가 1910년대에 한반도의 토지조사 사업에 사용했던 대나무 줄자와 같은 재래식 측량장비를 그대로 사용했다. 더구나 측량 결과를 종이 도면에 연필로 그렸기 때문에 오차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1,200분의1 축척 지적도의 경우 연필심 두께 0.1㎜는 실제 땅 12㎝에 해당한다.
1993년에 처음으로 거리 측정의 정확도를 향상시킨 전자측량장비가 도입됐다. 하지만 업무 처리는 여전히 아날로그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아날로그 업무 처리가 디지털로 바뀐 것은 2005년부터다. 당시 대한지적공사는 레이저를 이용해 거리를 측정하는 광파거리측정기를 컴퓨터와 연결하는 토털측량시스템(TOSS)을 개발했고 이를 현재까지 지적 측량에 적용하고 있다. 이 시스템을 이용해 수작업으로 처리했던 많은 업무를 온라인으로 처리, 효율성과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높여 우리의 측량 기술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2006년 전국적인 네트워크 RTK 시스템 구축으로 우리나라의 측량 인프라는 세계 상위권으로 진입했다. 문제는 이러한 기술을 기반으로 한 성공 모델, 즉 모범 사례(BPㆍBest Practice)를 개발해 공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지적 재조사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우선 RTK 측량은 기존 팀 단위의 토털측량 방식에 비해 시간과 비용이 대폭 절감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에 따르면 RTK 시스템은 정확도를 유지하면서 현행 측량방법에 비해 시간은 46%, 비용은 20∼30% 적게 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시스템이 도입되면 또 한 번 측량기술의 패러다임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공간정보 융·복합산업 발전 물꼬 터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지적 재조사를 통해 정밀한 디지털 지적제도를 구축하고 이것을 공간정보 인프라와 연계하면 그 활용 분야는 무궁무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정보기술(IT)을 접목한 다양한 공간정보 융ㆍ복합산업이 발전할 것이다. 벌써 이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3월 공간정보연구원이 개원한 데 이어 6월에는 공간정보산업진흥원이 문을 열었다. 공간정보의 연구ㆍ생산ㆍ유통을 위한 토대가 구축된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토지등록ㆍ컨설팅ㆍ3D측량사업 등 지적제도와 공간정보산업의 해외 진출은 해마다 확대될 것이다.
공간정보는 각종 재난 방지와 지구 온난화, 식량 문제 등 범지구적 문제에 대처하는 데도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지적 재조사 사업은 측량 기술의 혁신과 관련 산업 발전으로 이어져 일자리를 창출하고 인류의 삶을 풍족하고 안전하며 행복하게 만드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이 사업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도록 국민의 이해와 응원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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