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號 본선 들러리로 전락
유럽파 10명 사상 최다였지만 대부분 2부리그·비주전 신세
국내파·해외파 경쟁구도 구축… 韓축구 새로운 10년 도모해야
2009년 20세 이하 월드컵 8강,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동메달에 이어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로 감독으로서도 성공을 거듭하던 홍명보(45). 하지만 최고 무대 월드컵에서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면서 당장 지휘봉을 계속 잡기도 부담스러운 입장이 됐다. 대회 준비 때부터 편향된 듯한 선수 선발로 '의리 논란'에 시달리더니 경기에서는 '1승 제물' 알제리 사령탑과의 전술 대결에서도 완패, 축구 인생 최대 실패를 겪었다. 최고 스타 홍명보의 몰락과 함께 한국 축구의 현주소도 월드컵 조별리그 1승이 버거운 '본선 들러리'로 돌아오고 말았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전통의 강호들을 피해 러시아·알제리·벨기에와 같은 조에 편성되고도 1무 2패(3골 6실점)로 조 꼴찌로 밀려난 한국 축구. 1998 프랑스 월드컵 이후 16년 만에 무승으로 짐을 싸면서 20세기로 퇴보하고 만 한국 축구는 2002년 '4강 신화'의 단꿈에서 깨어나 새로운 10년을 도모해야 할 출발선에 섰다.
◇허울 좋은 사상 최다 유럽파=이번 대회 한국의 최종 엔트리 23명 가운데 유럽파는 10명. 사상 최다다. 큰물에서 경험을 쌓았으니 월드컵에서도 그 효과가 나와야 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그나마 이름값 이상을 해낸 유럽파는 알제리전(2대4 패)에서 개인기로 1골을 뽑은 막내 손흥민(레버쿠젠)뿐. 손흥민은 독일 분데스리가 4위 팀에서 유럽 챔피언스리그까지 경험한 세계적 유망주다. 하지만 다른 유럽파들은 지난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간신히 잔류한 팀 소속이 1명, 다음 시즌 잉글랜드 2부리그로 강등되는 팀에서 뛴 선수가 1명이고 2부리그 소속이 3명이었다. 손흥민을 제외한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4명 가운데서는 수비수 박주호(마인츠)만이 소속팀에서 주전 노릇을 했는데 이번 대회에서는 부상 여파 때문인지 벤치만 달궜다. 월드컵에서 '유럽 효과'를 기대할 정도의 인물은 거의 없었던 셈이다. 27일(이하 한국시간) 상파울루 코린치앙스 경기장에서 치른 조별리그 최종전만 봐도 유럽파 대부분은 벨기에 '황금세대'의 1.5군을 상대로도 개인 기량에서 확연히 밀렸다. 역대 최연소(평균 26.1세) 대표팀에 패기와 투혼을 원했으나 시작부터 대승을 의식, 오버 페이스를 한 나머지 정작 1명이 많은 수적 우세 상황에서는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의리 축구의 몰락?=거스 히딩크(네덜란드) 감독은 '한국식 압박'으로 4강 신화를 조련했지만 그에 앞서 수평적 선수 선발이 있었다. 히딩크에게 한국은 그가 네덜란드 감독 시절이던 1998 월드컵에서 5대0으로 손목을 비튼 팀일 뿐이었다. 아는 선수도 거의 없었고 어떤 선수가 어느 팀에서 뛰는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의리'로 선수를 가릴 여지 자체가 없었다. 특정 선수에 대한 일체의 선입견을 배제한 체력과 실력이 히딩크의 주요 선발 기준이었고 이것이 대성공으로 이어진 것이다. 히딩크의 원칙 있는 대쪽 선발 기용이 없었다면 한국이 낳은 프리미어리거 박지성도 없었다.
홍 감독도 국내파를 시험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유럽파가 일정상 합류할 수 없는 올 초 미국 전지훈련에서 국내파로만 평가전을 치르는 등 옥석 가리기의 과정을 거치기는 했다. 하지만 과정은 짧았고 유럽파와 국내파의 건강한 경쟁 구도를 만들지 못했다. 홍 감독으로서는 아는 선수를 쓰는 게 안전한 선택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올림픽에서의 성공에 안주한 셈이 됐다. 이번 대회 대표팀에 런던 올림픽 멤버는 모두 12명. 올림픽과 월드컵은 출전팀 수준부터 완전히 다른 대회임에도 런던의 추억이 브라질로 이어지기를 바랐다. 지난해 6월 대표팀 사령탑에 선임된 홍 감독의 임기는 내년 1월 아시안컵 때까지. 홍 감독은 거취에 대해 "저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지배당하지 않고 제가 판단한다"면서도 "이 팀은 처음부터 제가 시작했고 이번 월드컵까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말해 30일 오전4시40분 귀국 뒤 거취에 대해 입장을 표명할 뜻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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