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리버풀이 노리는 유럽 축구의 대표 유망주 손흥민(22·레버쿠젠). 그는 더 이상 유망주가 아니었다. 한국은 '1승 제물' 알제리에 거꾸로 제물이 되고 말았지만 손흥민은 대표팀 에이스 자질을 증명했다. 이제 관심은 벨기에전에서 그의 역할이다.
손흥민은 23일(한국시간) 알제리와의 브라질 월드컵 H조 2차전에 선발 출전해 풀타임을 뛰며 후반 5분 1대3으로 쫓아가는 만회 골을 터뜨렸다. 월드컵 본선 2경기 만에 나온 데뷔 골인 동시에 이날 대표팀 전체의 첫 번째 슈팅이자 첫 골. 손흥민의 재치가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기성용(스완지)의 롱 패스가 수비 2명 사이에 있던 자신의 등을 맞고 흐르자 손흥민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척하며 수비를 속인 뒤 왼쪽으로 툭 치고 나가 왼발로 상대 골키퍼의 다리 사이를 갈랐다. 경기 MVP로 뽑혔던 러시아와의 1차전에서 3차례 슈팅을 골로 연결하지 못한 아쉬움을 다음 경기에서 씻은 것이다. 활발했지만 결정력이 부족했던 첫 경기를 지나 두 번째 경기에서는 골 맛을 봤으니 벨기에전에서는 모든 것을 보여줄 차례다.
최고의 기량을 끌어내기 위해 손흥민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을 입히는 것이 중요하다. 대표팀에서 그의 위치는 왼쪽. 하지만 이날 전반을 0대3으로 마치자 손흥민은 후반부터는 사실상의 '프리 롤(포지션에 구애 받지 않고 마음대로 공수를 누비는 역할)'로 뛰었다. 후반 초반에는 섀도 스트라이커 자리에서 움직이더니 시간이 흐르자 오른쪽을 누볐고 막판에는 수비에까지 깊숙이 가담하는 한편 코너킥과 프리킥 등 세트피스시 키커로까지 나섰다. 지금의 손흥민을 있게 한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 시절에도 프리 롤일 때 가장 빛났다.
프리 롤 완수의 관건은 체력이다. 손흥민은 이날 후반 42분 페널티 박스 안 왼쪽에서 완벽한 어시스트 기회를 잡았으나 패스가 빗맞고 말았다. 이 시간을 전후해 발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지 않아 표정이 저절로 찡그려졌다. 후반 42분 안타까움에 땅을 친 손흥민은 경기 후 눈물을 쏟았다. 그는 "월드컵 첫 골을 넣은 기쁨보다는 진 것이 더 크고 마음 아프다"면서 "후반처럼 전반부터 바짝 붙었다면 알제리도 힘든 경기를 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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