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로 여겨져온 배임죄에 대해 대법원이 또 제동을 걸었다. 대법원이 10일 조세포탈과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재현 CJ 회장 사건을 파기 환송함으로써 기업인들에게 막무가내식으로 적용돼온 배임죄의 설 자리가 더욱 좁아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이날 이 회장에게 징역 3년과 벌금 252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 회장에게 적용된 배임죄 규모가 실제보다 지나치게 부풀려졌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지난 2013년 9월 파기 환송한 김승연 한화 회장의 상고심에 이어 대법원은 이번에도 이 회장에게 씌워진 혐의 중 배임죄를 특히 꼼꼼히 살폈다. 이에 따라 그동안 기업인들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에 대한 판단마저 위축시킨다는 비판을 받아온 배임죄를 보다 합리적이고 현실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 사건에서 대법원이 원심과 다르게 판단한 내용은 일본 부동산 매입과 관련한 배임죄 부분이다. 원심은 이 회장이 개인재산 증식을 위해 은행 대출금으로 일본의 팬재팬빌딩과 센트럴빌딩을 사들이면서 CJ재팬이 대출 보증을 서도록 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판단했다. 원심은 특히 배임 피해 규모를 대출금 전액인 309억원으로 봤다. 이에 배임액이 50억원 이상일 때 적용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을 이 회장에게 적용해 형량이 많아졌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같은 피해액 산정이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CJ재팬이 팬재팬의 대출에 연대보증을 할 때 팬재팬의 변제능력이 전혀 없었다면 몰라도 대출금을 자력으로 변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므로 대출 채무 전부를 팬재팬의 이득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배임액을 지나치게 많이 산정한 원심의 판단에 제동을 걸고 보다 엄격하게 배임죄를 적용하도록 하급심에 요구한 셈이다.
재계와 학계는 기업가정신을 독려한다는 측면에서 법원의 이 같은 판단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배임죄 제도 개선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법원이 개별 판결을 통해 배임에 대한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며 "이번 판결도 이 같은 법원의 역할과 방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신석훈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팀장도 "대법원의 이번 결정은 무리한 배임죄의 확장을 막으려는 취지로 보인다"며 "과거 손해액을 넓게 보는 경향과 달리 합리적으로 배임 여부를 본 판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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