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났다. 졸업 후 처음 본 친구들이 대부분이라 낯설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코흘리개 때 모습이 스치듯 떠올랐다. ‘아, 그래…. 세월이 이렇게 빠르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후 모임은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지속됐다.
그러던 중 페이스북에 가끔씩 들어가 보니 친구들이 올려놓은 글 중에 유독 눈에 띄는 글이 있었다. 미술 작품을 보고 올린 작품 감상문이었는데 식견이 전문가 뺨치는 수준이라 더욱 놀라웠다. 이 글을 쓴 친구는 대기업 임원으로 미국 현지 법인에서 일하고 있는데 미술과는 전혀 상관없는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공도 미술과는 거리가 먼 친구였다. 글의 콘셉트도 재미있고 특히 인상적이었던 사실은 직접 본 작품에 대해서만 글을 남긴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이 친구를 다시 만났고 그 이유를 물어봤더니 은퇴한 후 자기의 꿈이 미술관 도슨트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도슨트라는 말조차 생소하지만 해외 유명 미술관을 다녀보면 백발이 성성한 분들이 자원봉사로 전시회를 설명하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 이처럼 도슨트는 전시회를 설명해주는 사람이다. 관람객에게 미술품을 감상하기에 앞서 전시 작품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을 통해 관람객의 전시관람 이해를 돕는 일을 한다.
사업가로 성공한 지인 중에는 은퇴 후 사업을 직원들에게 물려주고 본인이 평소 좋아하던 미술 공부를 해서 전공자가 된 분이 있다. 그는 손주들을 위해 알기 쉬운 미술책을 써서 출간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할아버지가 손주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런 살아 있는 미술 이야기인 셈이다.
2000년 전 로마시대의 철인 키케로는 그의 명저 ‘노년에 관하여’라는 책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노년이 힘든 일반적인 네 가지 이유를 들면서 첫 번째로 노년은 우리를 활동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 젊었을 때와 비교해 신체적인 체력은 떨어질 수 있으나 정신적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은 오히려 노년에 원숙할 수 있다는 점을 키케로는 이 책에서 역설했다. 그러면서 은퇴 이후의 삶이 너무 가난한 것도 노년을 힘들게 만들지만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어리석은 자에게는 노년은 짐이라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은퇴 후 삶이 큰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세월에 상관없이 공부하고 준비해가는 인생. 참으로 멋지지 않은가. 앞으로 은발의 멋진 분들이 인생의 경륜을 담아 설명하는 광경을 미술관에서 많이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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