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융당국이 버락 오바마 정부 금융개혁법의 핵심 조항인 이른바 '볼커룰'을 최종 승인하면서 월가 규제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 하지만 월가의 로비에 밀려 초안에 비해 일부 규제조치가 후퇴하면서 '대마불사(too big to fall)' 관행 등을 개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통화감독청(OCC), 증권거래위원회(SEC),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등 5개 기관은 10일(현지시간) 볼커룰 최종안을 승인하고 오는 2014년 6월30일에 발효한 뒤 유예기간을 거쳐 2015년 7월22일부터 실시하기로 했다.
전 연준 의장인 폴 볼커의 이름을 딴 볼커룰은 지난 2010년 발효된 금융개혁 법안인 '도드프랭크법안'의 하위 규정으로 은행의 자기자본 거래를 규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최종안은 이른바 '프롭트레이딩(Proprietary trading)'으로 불리는 자기자본 거래를 대부분 금지했다. 프롭트레이딩은 금융기관이 고객의 예금이나 신탁자산이 아닌 자기자본·차입금 등을 주식이나 채권·파생상품 등에 투자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 은행의 헤지펀드와 사모펀드에 대한 투자도 자기자본의 3% 이내로 제한된다. 아울러 전체 포트폴리오의 위험을 줄이는 헤지 장치인 포트폴리오 헤징도 금지된다. 이른바 '최고경영자(CEO) 증명'이라는 규정도 포함됐다. 은행 경영진이 볼커룰을 이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서면으로 입증하도록 한 뒤 위장 자기자본 거래 등 문제가 발생할 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반면 초안에 비해 규제가 완화된 대목도 눈에 띈다. 최종안은 주가 급등락으로 선의의 피해자들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관행인 '시장조성(market-making)'을 위한 자기자본 거래를 허용하기로 했고 거래인(트레이더)들의 보수규제도 완화했다.
일단 이번 볼커룰 도입으로 월가 대형은행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투기적 거래에 재갈을 물린 탓이다.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볼커룰 도입으로 월가 8개 대형은행의 세전이익이 연간 100억달러 정도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자기자본 거래에 치중하던 골드만삭스와 도이체방크의 피해는 더 크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골드만삭스의 경우 매출의 절반가량이 트레이딩에서 발생해 볼커룰 도입으로 연간 수익이 25%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최종안이 초안보다 후퇴한데다 규정 문구가 지나치게 방대하고 모호해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도드프랭크법은 848쪽에 이르고 하위법령도 1만4,000쪽에 달한다. 사이먼 존슨 MIT대 금융학 교수는 "최종안은 전반적으로 규제가 완화됐고 감독당국이 해석할 여지가 많아졌다"고 평가했다.
마켓워치도 이날 '볼커룰에도 월가가 곤경에 처하지 않는 세 가지 이유'라는 제목의 글에서 "법령이 너무 복잡하고 해석의 여지도 많아 월가가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며 "월가 탐욕에 대한 대중의 불만도 무뎌지고 있어 금융당국이 대마불사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이를 반영하듯 월가도 겉으로는 강한 불만을 늘어놓으면서도 내심 '합리적 규제 수준'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실제 이날 볼커룰 승인 소식에도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 주가는 오히려 1.2% 올랐다.
FT에 따르면 한 은행 고위경영진은 "망치로 파리를 때려잡는 규정을 내놓을 것으로 봤는데 이 같은 우려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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