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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는 인구편차를 3대1까지 허용한 현행 공직선거법 관련 조항에 대해 "1인의 투표가치가 다른 1인에 비해 최대 3배의 가치를 갖는 것은 지나친 투표가치의 불평등"이라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투표가치의 평등은 국민 주권주의 측면에서 민주주의 제도를 설계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준이 돼야 한다. 그런데 표의 등가성이 훼손된 것은 인구편차의 문제만이 아니다. 투표함에 담긴 표 가운데 절반이 넘는 표가 버려지고 있다.
1988년 제13대 총선부터 지난 2012년 제19대 총선에 이르기까지 7번의 총선이 있었는데 평균 1,023만2,362표가 사표가 돼 '죽은 표'가 50.9%로 '산 표'보다 많았다. 어떤 유권자의 한 표는 아예 짓밟히고 파묻히고 만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바로 승자독식을 보장한 소선거구 일위대표제와 18%에 불과한 비례대표 의석수 때문이다.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유권자가 정당에 투표한 대로 의석수를 배분하는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제시했다. 사표를 양산하는 현재의 선거제도를 개혁해 비례성을 확보하고 투표가치의 평등을 제대로 보장할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국회를 '민의의 전당'이라고 표현한다. 이 말에 현실감을 느끼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국회에서 민의가 꽃피기 위해서는 국회가 국민의 삶을 닮아야 한다.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700만 비정규직, 500만 영세자영업자의 목소리가 국회에 담기지 못하고 있다. 민심에 비례해 의석수가 보장되는 선거제도로의 개혁만이 한국 정치의 미래를 열 수 있다.
그러나 국회 정개특위가 이 핵심적인 문제를 여전히 비껴가고 있는 것은 유감이다. 되레 비례 국회의원 수를 줄이고 지역구 늘리는 방안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이것은 국민 대표성 강화라는 시대 정신에 역행하는 발상이다.
큰 선거가 없는 올해야말로 정치개혁의 골든타임이다. 국회 정개특위는 역사적 사명감을 갖고 승자독식 선거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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