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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전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오셨던 것처럼 이번에도 훌훌 털고 일어나실 줄 알았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이 18일 끝내 서거했다는 소식을 접한 국민들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이라는 충격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맞은 전직 대통령의 죽음이었기에 더욱 마음 아파했다. 특히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 6ㆍ15 공동선언 등 김 전 대통령이 생전에 이뤄낸 업적은 국민들의 그리움을 더했다. ○…나로호 발사를 하루 앞두고 들떠 있던 국민들은 우리나라 민주화의 큰 족적을 남긴 김 전 대통령의 서거에 큰 충격과 애도에 잠겼다. 광고대행사에 근무하는 조모(31)씨는 "민주주의를 위해 평생을 바친 김 전 대통령의 서거는 노 전 대통령에 이은 것이어서 더 큰 충격"이라며 "대한민국의 큰 별이 잇따라 진 데 대한 슬픔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안타까워 했다. 서강대에 재학하고 있는 박성민(27)씨는 "한 해에 전직 대통령을 두 분이나 떠나 보내는 일을 겪다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박씨는 "김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 모두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공격을 받았는데 두 분이 떠나니 정말 소중한 10년의 가치를 잃어버린 것 같아 가슴 한 편이 휑하다"며 비통해 했다. 한국외대에 재학 중인 강태희(24)씨도 "세상을 알아갈 때 즈음 알게 된 첫 번째 대통령이어서 더욱 안타깝다"고 고인을 추억하며 "우리 사회가 김 전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통합의 길로 나아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부 오모(57)씨는 "우리 사회의 큰 별이 진 것 같은 느낌"이라면서도 "많은 국민들이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지켜봤기에 쓸쓸해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애써 위로했다. ○…사회 각계 인사도 애도를 표했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 운동의 산 증인이자 남북관계 진전의 상징이셨던 분"이라고 평가한 뒤 "지금 사회 분위기는 예전의 긴장관계로 역류ㆍ퇴행하고 있는데 김 전 대통령의 유지를 이어받아 남북 통일로 가는 계기로 삼기 바란다"고 말했다. 진보나 보수 등 이념 성향을 떠나 시민사회단체들도 한마음으로 고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박정은 참여연대 정책실장은 "한반도 평화와 민주화에 대한 헌신으로 국제사회에서도 인정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이었다"고 고인을 평가했고 고계현 경제정의실천연합 정책실장은 "현대 사회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민족화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안전망 구축 등 공로가 큰 거목(巨木)이자 인권 향상과 민주화에 큰 기여를 한 대통령이 병마로 돌아가셔서 애석하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대연 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도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ㆍ남북관계 등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족적을 남긴 지도자"라고 강조한 뒤 "남북관계를 평화ㆍ화해로 전환시킨 것은 필생의 업적인데 갑자기 후퇴해 충격이 크지 않았나 싶다"고 전했다. 생전에 김 전 대통령과 갈등관계를 보였던 보수 성향 단체들도 추모의 뜻을 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두영택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대표는 "우리나라의 큰 별이 졌다. 애도를 금할 수 없다. 우리도 뉴스를 보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전희경 바른사회시민회 정책실장은 "깊은 애도를 표한다. 국가 원로이고 민주화에 기여했다"며 "요새 사회적으로 원로를 필요로 하는 시점이고 화해를 위해 꼭 계셔야 할 분이어서 우리 사회에 주는 안타까움이 클 것 같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도 애도의 물결이 넘쳤다. 네티즌들은 각종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게시판이나 블로그 등에 '근조(謹弔)'를 뜻하는 '▶◀' 표식을 한 글을 올리며 애도와 추모의 뜻을 보냈다. 한 포털 사이트 추모 게시판에는 한 시간 만에 8,000여개가 넘는 댓글이 달릴 정도였다. 아이디(ID)가 '바람과구름과비'인 한 네티즌은 "이승에서는 항시 평안하지 못하셨으니 저승에서나마 평안하시고 대한민국을 항시 보살펴주시고 보호해주세요"라고 썼다. '파랑새'라는 네티즌도 "당신은 대한민국이 왜 민주주의를 필요로 하는지 알게 한 분"이라며 "당신과 같이 살았던 20세기를 역사는 자랑스러워 할 것"이라고 고인을 추억했다. ○…김 전 대통령의 자택이 있는 서울 동교동의 이웃주민들도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미처 알지 못한 일부 주민은 기자에게서 뒤늦게 서거 소식을 듣고 믿지 못하겠다는 듯 망연자실해 하기도 했다. 동교동에서 10년을 살았다는 황원철(55)씨는 "위대한 분이 운명하셨다"며 침통해 했다. 황씨는 "대통령님이 위독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서거했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나라를 위해 평생 살아오신 분이라 더 마음이 아프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다는 한 주민은 "동교동의 큰 별이 떨어졌다. 동네에서도 자주 뵀고 퇴임 전에는 동교동 주민들을 청와대로 초청하셔서 만찬도 베풀어주셨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정모(32)씨는 "기득권보다는 서민들을 챙겼고 민주화를 위해 많은 희생을 치르신 존경스러운 어른을 보내게 돼 슬프다"고 전했다. ○…이날 일부 시민이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하려다 경찰에 제지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경찰은 "오후2시30분께 시민 20여명이 봉고차 1대를 끌고 분향소 설치를 위해 서울광장 진입을 시도해 일단 저지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때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차렸던 사람들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서울광장으로 통하는 지하철 1호선 시청역 5번 출구 앞과 대한문 앞, 청계광장 주변 등 도심에 10개 중대, 800여명을 배치해 분향소 설치를 막고 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분향소 설치를 일단 저지했지만 이를 허용하는 문제는 김 전 대통령 유족의 뜻과 서울광장을 관리하는 서울시의 견해를 들어본 뒤 결정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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