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거의 6년. 그동안 각국의 금융당국은 많은 새로운 규제를 도입해 은행을 다소나마 안정시키려고 애써 왔다. 자본과 유동성에 관한 새로운 규제들은 은행 손실에 대한 회복력을 조금은 개선하고 뱅크런에 대해서도 좀 더 견뎌낼 수 있게 만들 것이다. 예컨대 미국의 '볼커룰'과 같은 조치는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을 가지고 거대은행들이 투기적 거래를 할 가능성을 어느 정도 줄일 것이다. 새로운 규제조치들은 거대은행의 규모를 다소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여기서 거대은행은 '대마불사 은행(too big to fail bank)' 즉 규모나 영향력이 너무 커서 그 은행이 망할 경우 한 나라 경제 또는 세계경제가 위태로울 수 있는 은행을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규제조치도 보다 걱정거리고 알아차리기 어려운 문제 즉 금융회사 간의 상호연관 속에 잠복한 위험을 제대로 겨냥하지는 못했다.
금융회사가 제기하는 시스템리스크는 금융기관 자체의 건전성이나 규모보다 훨씬 크다. 금융회사들과 금융시장 전체가 충격에 얼마나 민감한가를 파악하려면 금융회사들 간의 자세한 거래관계를 알아야 한다. 예컨대 거미줄같이 복잡한 금융거래망은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거대한 보험회사 AIG그룹을 거의 도산으로 몰고 갔고 자금시장을 동결해 전세계 기업들의 신용경색을 초래할 정도였다. 따라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과제는 거대은행들이 보다 안전한 금융거래망을 유지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금융기관들이 안전한 상호 의존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은 개념적으로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시스템리스크를 증대시키는 은행에 대해서 그에 상응하는 세금을 부과하라고 권고한다. 현재 은행은 그들이 빌려준 돈이 떼일 것만 걱정하지 그 대출이 금융시장 전체에 시스템리스크를 증대시키고 연쇄적으로 부도를 초래하는 위험은 걱정하지 않는다. 은행이 대출을 하는 데 따라 발생하는 시스템리스크에 대해 과세하면 시스템리스크를 유발하는 금융회사 간의 의존관계를 줄이고 금융위기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대은행을 과세하더라도 전체 리스크가 줄지 않기 때문에 거대은행이 안전하지 않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세금을 부과하면 일부 은행들은 규모를 줄이겠지만 반면 거대은행들이 부실화되면 공적자금에 의한 정부구제가 기정사실로 여겨질 우려도 있다. 더욱 문제는 세금을 낸 은행들이 오히려 적은 자본으로 보다 위험한 투자를 해서 세금 낸 만큼 이익을 보충하려는 도덕적 해이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 시스템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과세가 오히려 은행의 리스크를 더욱 키울 수 있다.
은행이 공적자금을 남용해 국민에게 부담을 주지 않도록 하는 보다 나은 방법은 무엇보다 은행이 부실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금융감독 당국은 거대은행에 대해서는 다른 은행들보다 높은 추가 자본 비율을 적용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자본비율을 높이면 은행경영이 건전해지고 금융위기 가능성이 줄어드는 이점이 있다. 바젤은행감독위원회는 최근 미국의 JP모건체이스 은행과 영국의 HSBC은행 등 29개의 글로벌 거대은행을 지정해 다른 은행들보다 엄격한 추가 자본비율을 적용하도록 했다. 다시 말해서 이 거대은행들은 앞으로 가장 높은 추가 자본비율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이러한 추가 자본 부담이 거대은행들로부터 공적자금 남용을 막고 금융위기를 방지함으로 거대은행들을 보다 안전하게 하는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이 은행들이 추가 자본비율 부담을 낮추려면 은행의 규모를 줄이거나 다른 금융회사와 거래관계를 줄이고 덜 복잡해지면 된다. 은행은 규모가 클수록 다른 금융기관과 의존관계가 클수록 또 복잡할수록 추가 자본비율이 높아진다. 이런 방식으로 금융거래의 안정적인 부분은 보호하고 시스템리스크를 증대하는 부분은 억제할 수 있다. 이런 조치는 글로벌 은행에 대해서 논의되고 있지만 공적자금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 국내 대형은행에 대해서도 검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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