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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으로서의 예수가 아닌 2000여년전 살았던 인간 예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예수는 죽음 이후 후세에 신격화하며 전지전능자로 기독교인에게는 그의 말과 뜻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절대자로 자리잡았다. 그러다 보니 예수가 인간으로서 그 시대의 역사와 맥락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았으며 어떤 의도로, 어떻게 핍박받는 소수 민족을 결집시켜며 유대인의 지도자가 돼 갔는지의 실증적 얘기들은 한 켠으로 묻힌게 사실이다.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타임 머신을 타고 그 당시로 돌아가 제 3자적 관점에서 예수를 피사체로 놓고 그의 궤적을 음미해 볼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이슬람교도이자 세계적 종교학자인 저자는 자신이 한때 그토록 사랑했고(저자는 한때 기독교도였다) 동시에 의심했던 예수의 진실된 모습을 추적하기 위해 20여년간 연구에 매진한다. 유대인 역사학자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를 중심으로 고대 문헌들, 저명한 학자들의 저작들을 근거로 예수가 당시 사회에 널리 퍼졌던 '젤롯'의 신념을 간직한 정치적 혁명가라는 자신의 주장을 하나씩 증명해 나간다. 마가복음에서 언급한 테크톤(당시 로마에서는 그리스어인 테크톤을 '문맹 소농'의 의미로 사용)이라는 직업, 가난한 갈릴리 시골 마을이라는 성장 환경, 유대 농민 가운데 문맹률이 97%였던 당시 사회 상황을 감안하면 예수 역시 문맹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흥미롭다.
저자는 예수가 살았던 시기 유대인 사회의 주요 사상으로 알려진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와 구별되는 '젤롯'이라는 제4의 사상에 주목한다. '열심(ZEAL)'이란 단어에서 파생된 '젤롯'의 특징은 외세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겠다는 흔들리지 않는 헌신과 뜨거운 신념을 가리킨다. 경건한 유대인이라면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상관 없이 누구나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사상이 바로 '젤롯'이라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에 살던 유대인들이) 숱한 침략과 핍박의 역사 속에서도, 과거의 예언을 실행하기 위해 메시아를 자처하는 리더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봉기했다.예수는 그 중에서도 단연 카리스마 넘치고 혁명적인 리더였다. 로마는 그를 십자가 처형했으나 그의 메시지는 종교가 되어 로마를 삼켰다. 절대 굴복을 모르는 의지, 하느님의 나라가 기어코 오리라는 열정적인 신념, 이것이 젤롯(zealot)이다."
세계 각지로 흩어져 목숨을 보전한 유대인들이 자신의 민족과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그리고 로마에 사는 초기 기독교인들을 선교하기 위해 집필하기 시작한 것이 복음서라는 주장도 흥미롭다. 저자는 "이를 위해서는 유대 민족주의, 혁명주의 색채를 지울 필요가 있었으며, 예수의 혁명적 정치가로서의 모습도 시대적 필요에 의해 점차 희석됐다"고 주장한다.
예수에 대한 종교적 믿음의 근간을 뒤흔드는, 마치 도발과도 이 같은 주장은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절대적 존재로서 예수가 아닌 시대적·사회적 맥락에서 예수를 입체적으로 들여다 보려고 애쓴 종교학자의 외로운 노력은 충분히 평가할 만하다.
지난해 인간 예수를 다룬 젤롯의 도발적(?) 내용에 전통적 기독교 사회인 미국은 격노와 흥분에 휩싸였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미디어인 폭스 TV가 저자를 불러 놓고 공격적인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반 이슬람 집단의 협박을 받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저자는 아마존과의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답한다. "그 시대의 종교나 역사적 문맥을 떼어 놓고 예수의 말씀을 진실로 이해할 수 없다. 당신이 예수를 선지자, 스승, 신의 대리자로 생각하는 것과 별개로 그가 진공 속에서 살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의 이러한 신념은 미국 내 반(反) 이슬람 감정에 대한 반성과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논쟁의 장(場)을 열어 젖혔으며, 책은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고 해외 25개국 이상에 수출되는 등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1만 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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