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아이히만과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를 기획한 전범과 나치식 개헌을 외쳤던 두 사람에게는 나치 말고도 사이먼 위젠탈(Simon Wiesenthal)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남미에서 도피 중이던 아이히만은 위젠탈에게 걸려 이스라엘로 끌려가 사형에 처해졌다. 기세등등하던 아소는 사이먼 위젠탈 센터의 항의성명이 나오자 꼬리를 내리고 발언을 거둬들였다.
△사이먼 위젠탈(1908~2007)은 나치 추적자. 일가 친척 89명을 잃고 부인과 단 둘만 살아남은 뒤 건축설계업을 접고 나치 전범을 색출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가 찾아낸 나치 전범이 1,100여명이 넘는다. 안네 프랑크를 체포했다는 게슈타포 장교와 유대 여성 학살 전담자에서 아이히만까지 신분을 세탁해 미국과 중남미로 숨어들었지만 위젠탈의 끈질긴 추적을 피할 수 없었다. 1977년에는 로스앤젤레스에 사이먼 위젠탈 센터를 설립해 인종 차별과 인권 침해까지 활동 범위를 넓혔다.
△사이먼 위젠탈 센터는 나치 잔당 추적은 물론 반(反) 유대인 활동을 감시한 결과를 매년 발표한다. 1996년에는 스위스가 나치 금괴를 은닉하고 처분하는 데 도와줬다고 폭로해 스위스 당국의 사과와 42억5,000만달러 보상까지 이끌어냈다. 한국의 만화가인 이원복 교수에게도 압력을 행사한 적이 있다. 베스트셀러 ‘먼나라 이웃나라’ 미국편에 실린 세 컷이 유대인을 비하했다고 문제 삼아 사과와 수정을 받아냈었다.
△나치 추적자는 위젠탈뿐 아니라 무수히 많다. 세계를 호령하는 유대인의 힘은 역사를 잊지 않는 데서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친일 행각마저 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해석이 다른 우리로서는 부럽기 짝이 없다. 위젠탈과 모사드에 의해 남미에서 잡혀온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유대인 여성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명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악의 평범성’이라는 명제를 남겼다. 모범생이자 깊은 신앙인이던 아이히만이 유대인 학살을 저지른 것은 악의 보편성과 평범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악을 악으로 반성하지 못하는 일본인이 아소 다로뿐이랴. 일본 극우가 지닌 악의 평범성이 걱정스럽다. /권구찬 논설위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