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의 급격한 엔화 약세를 공개적으로 비판할 경우 환율 전쟁을 촉발해 가뜩이나 취약한 글로벌 경기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ㆍ독일 등 주요국이 자국 수출 산업의 경쟁력 하락을 불러오고 있다며 불만을 드러내고 있어 엔화 가치 급락에 대한 불만이 언제든 터지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10~11일(현지시간) 영국 에일즈베리에서 열린 G7 재무장관ㆍ중앙은행장 회의는 일본 엔화 약세를 명시적으로 문제삼지 않은 채 폐막했다. 이들 G7 재무장관과 중앙은행장들은 재정 및 통화 정책은 인위적인 통화가치 하락을 목표로 해서는 안 되며 내부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만 쓰여야 한다는 원칙만 재확인했다.
조지 오즈번 영국 재무장관은 회의 폐막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양적완화 과정에서 국제규범의 틀을 벗어나 인위적으로 통화가치를 낮추는 시도는 배격한다는 기존의 G7 합의 사항은 유효하다"고 말했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은 "일본은행의 금융완화와 엔화 약세 상황과 관련해 비판적인 의견은 없었다"며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즈미 듀발리에 HSBC 이코노미스트는 "G7이 엔화약세를 용인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들은 미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와 유럽중앙은행(ECB), 영국은행(BOE)이 경기 부양을 위해 저금리와 통화발행을 늘려온 상태에서 일본의 양적완화ㆍ엔저 조치에 대해 말할 처지가 못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일본 경기 회복이 자국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는 측면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G7은 일본의 노골적인 엔저 유도에 대한 강한 경계감도 드러냈다. 제이컵 루 미국 재무장관은 G7 회담에 앞서 CNBC와 가진 인터뷰에서 "일본의 성장 문제는 이해하지만 국제적 규범의 틀을 어겨가면서까지 환율을 인위적으로 평가절하하려는 시도는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세력인 자동차 업계가 "일본이 엔저를 위해 환율을 조작하고 있다"는 비난 설명을 발표하면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도 엔화 약세를 좌시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도 "엔저 문제와 관련 집중적인 논의가 있었으며 앞으로 상황을 예의 주시할 것"이라며 엔저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일본 경제지인 니혼게이자이신문도 12일 "G7 회의에서 외부에 공개된 명시적인 대일 비판은 없었지만 회의 중 상당한 경계심이 감지됐다"며 우려감을 나타냈다. 니혼게이자이는 "일본의 정책이 중앙은행(일본은행)에 의지하고 있다는 불만도 나왔다"며 "일본보다 먼저 금융완화를 단행한 미국과 유럽이 엔저를 경계하는 것은 그만큼 자신들 사정도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회의에서 G7은 은행 구조개혁을 지속하고 탈세를 막기 위한 공동 대응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각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다국적 기업이 조세회피 지역을 이용해 세금을 회피하는 행위를 근절할 수 있는 정책 검토를 요청하기로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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