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15까지는 이렇게 되는 곳이다. 그 다음의 진행은 백에게 선택권이 있다. 가장 격렬하게 싸우는 길이라면 참고도1의 백1로 빳빳하게 내려서는 것이다. 흑은 2 이하 6으로 버티고 백은 7로 반발하여 난해한 공방전이 된다. "난투를 즐기는 이세돌이니 이 코스로 갈 가능성도 많습니다."(목진석9단) 그러나 이세돌은 실전보의 백16을 선택했다. 천천히 가자는 제안이었다. 흑23까지의 진행을 보고 목진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우연이겠지만 사흘 전에 기성전 토너에서 저와 이세돌이 두었던 바둑의 진행과 똑같습니다. 제가 백이었고 이세돌이 흑으로 이겨갔는데 오늘은 백의 입장에서 이세돌이 그것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백28까지 진행되자 목진석이 또 말했다. "여기까지도 똑같습니다. 마치 복기라도 하는 것 같은데 기분이 묘하군요. 흑으로 두든 백으로 두든 자신이 있다는 것일까요." 박영훈도 이 포석에 대한 연구가 미리 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흑29를 노타임으로 두었다. 모처럼 이세돌의 손길이 멎었다. "가장 강한 반발은 협공하는 것인데요. 이세돌의 기풍상 그게 등장할 것 같습니다."(목진석) 목진석이 그려 보인 가상도는 참고도2의 백1 이하 흑4였다. 그러나 이세돌은 이번에도 백30으로 참았다. 역시 천천히 가겠다는 선언이었다. 이세돌이 근래에 좀 변했다. 승부를 전혀 서두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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