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할머니는 23일(현지시간) 오후 프랑스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열린 증언회에 참석하고 나서 “말 같지 않은 소리에는 남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일본 정부는 최근 작성 경위 검증을 이유로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의 의미를 훼손한 검증보고서를 발표했다.
고령의 길 할머니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이날 소르본대에서 프랑스인 청중 앞에 섰다.
감옥에 갇힌 아버지를 빼낼 돈 10원이 필요했던 길 할머니는 13세 때 공장에 취직시켜 준다는 사람을 따라 길을 나섰다가 위안부가 됐다.
할머니는 “죽음보다 못한 삶일 줄 누가 알았겠나. 너무 아팠다”라고 수십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아픔을 떠올렸다.
이어 “열세 살 어린 나이로 너무 견디기 어려워 ‘엄마, 엄마’라고 소리쳤다”고 낮은 목소리로 증언했다.
할머니가 어린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성범죄와 잔혹한 폭력에 시달렸던 아픈 기억을 꺼내자 청중 일부는 눈시울을 붉혔으며 긴 한 숨을 내쉬기도 했다.
할머니는 “해방 뒤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싶었고 엄마 소리도 듣고 싶었지만 내겐 아무 의미 없는 이름들이었다”며 평범한 삶을 빼앗긴 설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이제 여든일곱이 된 나는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게 외친다”면서 “일본 정부는 사죄하고 배상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사의 피해자였던 할머니는 현재 세상에서 고통받는 자들과의 연대를 얘기했다.
“지구촌 곳곳에서 전쟁으로 고통받는 여성들과 어린이들이 내 힘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원합니다.”
길 할머니는 강연 마지막에 “20년 동안 나 혼자 싸웠지만 (일본 정부는) 들은 척도 안 하니까 여러분이 좀 도와달라”고 지지를 요청했다.
두 시간 남짓 지속한 증언회에 참석한 50명가량의 교수와 학생, 파리 시민은 증언을 숨죽인 채 경청했다.
파리7대학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한 학생은 “위안부 할머니 얘기를 직접 들으니 너무 안타까웠다”면서 “용기를 내 증언을 해줬다”고 말했다.
/디지털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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