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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7월8일] <1442> 일본 개항


SetSectionName(); [오늘의 경제소사/7월8일] 일본 개항 권홍우 편집위원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1853년 7월8일 오후5시, 일본 에도(현재 도쿄) 외항 우라가만. 매튜 페리 제독이 이끄는 미국 군함 4척이 항구로 들어왔다.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했던 페리는 개항과 통상을 요구하며 일본을 다그쳤다. 세계 최대의 포경국가로서 어업 전진기지 획득과 중국 무역을 위한 중간 석탄보급소를 확보하려던 미국은 결국 일본을 개항시켰다. 막부정권이 발동한 쇄국령으로 220년간 막혀 있던 일본의 문이 열린 후는 익히 아는 대로다. 서양 따라잡기에 나선 일본은 개항 50년 뒤 열강의 일원으로, 1차 대전 직후에는 3대 강대국으로 인정 받았다. 개항 이후 망국의 길을 걸은 조선과는 대조적이다. 과연 무엇이 일본의 급속한 현대화를 만들었을까. 한순간에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그렇지 않다. 일본의 도약은 누적된 결과다. 강력한 쇄국정책을 펼 때도 네덜란드만은 예외로 인정해 제한적이나마 세계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기에 빠른 변신이 가능했다. 페리의 회고록에는 일본인들이 네덜란드어를 유창하게 구사해 놀랐다는 대목이 나온다. 페리의 내항 이전에도 미국 선박이 적어도 8차례 네덜란드 국기를 달고 일본에 기착했으며 1846년에는 함포 72문을 탑재한 전함 2척으로 구성된 미국 함대가 개항을 요구하다 물러난 적도 있다.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일본 학자들은 막부정권의 탄압에도 죽음을 불사하며 일본판형으로 164권 분량에 이르는 프랑스 백과사전 번역(1846년)을 비롯해 일본어-네덜란드어 사전, 인체해부도 등을 편찬해 세상에 알렸다. 철권 통치에서도 예외를 인정했던 '소통' 정책과 선각자, 양심적 지식인들의 투쟁, 지식에 대한 욕구가 일본의 눈부신 도약을 이끌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페리 제독의 내항은 격발장치였을 뿐이다. 준비된 자만이 과실을 얻을 수 있다.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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