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해인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후춘화(사진)가 개혁 1번지인 광둥성 서기에 임명됨으로써 시진핑 시대에도 순항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18일 네이멍구자치구 당 서기였던 후춘화를 광둥성 당 서기로 임명했다. 지난달 18차 당대회에서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부 25명의 정치국원 자리에 오른 그는 베이징ㆍ상하이ㆍ톈진ㆍ충칭 당 서기와 더불어 상무위원에 진입할 수 있는 요직인 광둥성 서기 자리를 꿰찼다.
광둥성은 시진핑 당 총서기가 취임 이후 흔들림 없는 개혁개방 정책을 천명하기 위해 첫 지방시찰지로 찾았던 곳이다. 시 총서기는 이곳에서 지난 1990년대 초 덩샤오핑의 남순강화를 본떠 광둥성의 선전ㆍ주하이ㆍ광저우 등 주요 도시를 돌아보는 이른바 제2의 남순강화 행보를 보이며 중국의 현재 화두인 반부패와 개혁개방 노선을 가일층 강화해나가겠다고 천명했다.
이같이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광둥성 서기에 후춘화가 발탁됐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는 게 베이징 정가의 분석이다. 중국 언론매체들도 19일 일제히 후춘화를 집중 조명하는 기사를 실었다. 특히 후춘화의 거침없는 승진 행보에 초점을 맞췄다. 매체들은 1963년생인 후춘화가 16세 때 베이징대 입학, 27세에 부청장급, 29세에 청장급, 34세에 부부장(차관)급, 43세에 부장(장관)급, 45세에 성장 대열에 들어서는 등 중국 관료사회에서 항상 '최초'의 기록을 세워왔다고 소개했다.
후춘화는 후진타오의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 후계자로 베이징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뒤 중앙에서 관료생활이 가능한데도 오지인 시짱(티베트)을 자원했을 정도로 '당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시짱 근무를 계기로 후춘화는 대부격인 후진타오의 눈에 들어 출세가도를 달렸다.
후춘화는 후진타오와 마찬가지로 2006년 공청단의 중앙서기처 제1서기를 거쳤고 공청단 내에서는 '리틀 후진타오'로 불려왔다. 베이징 정가에서는 후춘화가 광둥성 서기 부임을 계기로 시진핑 시대에도 순풍을 탈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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