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다른 스포츠 종목과 달리 심판이 없다. 경기위원이 있지만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판정을 내리는 심판과 다르다. 골프에서 경기위원의 역할은 플레이어의 문제 제기(클레임)가 있을 때 룰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이다. 공간적인 제약으로 일일이 따라다닐 수 없을뿐더러 플레이어의 양심을 존중하는 특성 때문이다. 따라서 선수 개개인이 심판이며 때로는 갤러리(관람객)나 TV 시청자가 심판 역할을 하기도 한다. 5일 끝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현대건설 서울경제 여자오픈에서 막판 우승자가 뒤바뀐 데에도 갤러리와 시청자 제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마지막 홀을 마쳤을 때까지도 우승한 줄 알았던 아마추어 장수연(함평골프고1)의 15번홀(파4) 규칙 위반 사실을 한 갤러리가 경기위원에게 어필하고 시청자가 방송 해설자에게 휴대전화 문자로 보내 제보했다. 장수연 본인의 의도가 아니었고 룰 적용의 융통성에 대한 의견이 분분할 수도 있으나 제3의 심판으로서 갤러리나 시청자의 역할이 새삼 확인된 셈이다. 이날 장수연의 15번홀 상황은 이랬다. 그린 밖에서 칩 샷을 할 때 장수연의 골프백이 홀쪽을 향해 세워져 있었다. 캐디 경험이 많지 않은 장수연의 아버지가 별 생각 없이 장수연의 앞쪽에 세워뒀던 것이다. 경기위원회는 비디오 판독을 거쳐 ‘플레이 선을 지시하는 것을 금지’하는 골프규칙 8-2를 위반했다고 판정, 이에 따른 2벌타를 부과해 이 홀 스코어는 파에서 더블보기가 됐다. 8조 2항은 ‘퍼팅 그린 이외의 곳에서 플레이어는 스트로크 하는 동안에는 플레이 선 또는 그 연장선 위에나 그 선 가까이에 아무 것도 세워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행히 스코어카드 제출 전에 타수를 정정했기 때문에 실격은 면했다. 갤러리나 시청자 제보로 벌타가 부과되거나 심지어 실격까지 이른 경우는 심심찮게 발생한다. 지난달 23일(한국시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세이프웨이클래식에서는 백전노장 줄리 잉스터(50ㆍ미국)가 실격 당했다. 10번홀에서 30분 가량을 기다리면서 클럽헤드에 무게를 더하는 연습기구를 부착해 연습스윙으로 몸을 푼 모습을 시청자가 ‘경기 중 클럽 변형’ 사실을 제보했다. 잉스터는 스코어카드를 제출한 뒤 이 일이 알려져 실격됐다. 2006년 KLPGA PAVV인비테이셔널에서는 박희영이 해저드 구역 내에 놓인 볼 주위 풀을 두 차례 만졌다가 스코어카드 제출 후 갤러리와 시청자 제보로 실격된 일이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