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가 국가 '브랜드'인 나라. 하지만 골프를 대표할 만한 변변한 '브랜드' 하나 없는 나라. 남자골프 메이저대회 챔피언을 배출하고 여자골프 무대를 호령하는 등 기량은 세계 중심에 서 있으면서도 관련 산업은 여전히 변방에 머물러 있는 한국의 현실이다. 20년 가까운 한국 골프용품업계의 게걸음 속에 국내 소비자들은 골프산업 선진국 업체들이 쏟아내는 최신 장비의 유혹에 속절없이 지갑을 열고 있다. 메이저 브랜드들의 가격정책에 따라 가격경쟁력마저 약해진 토종 브랜드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한때 의욕적으로 나섰으나 현재 명맥이 끊어진 메이커도 많다. 골퍼들의 맹목적인 유명 브랜드 선호는 여전하다. 최근 이런 가운데 일부 업체들이 기술력과 마케팅 전략을 앞세워 희망의 불씨를 살리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점유율 10%도 못 미쳐=관련 업계는 국내 골프용품 시장규모를 연간 2조원대로 추정하고 있다. 의류가 1조2,000억원, 클럽 5,000억원, 기타 볼과 신발 등이 3,000억원 정도로 파악된다. 이 가운데 용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골프클럽 분야에서는 그야말로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다. 복잡하고 불투명한 유통구조 탓에 정확한 데이터조차 찾기 어렵지만 시장점유율이 10% 미만이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을 정도다. 외환위기 직후 '박세리 바람'과 맞물려 랭스필드ㆍ맥켄리 등 보급형 제품이 반짝 인기를 끌었던 당시 국산 골프채 점유율은 15% 수준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그러나 영세한 국내 업체가 해외 브랜드의 거센 마케팅에 맞서기는 역부족이었다. 자본부담 등의 이유로 하나둘 사라져갔고 점유율은 도리어 더 떨어졌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국내 골프용품업계는 체질적으로 글로벌 브랜드에 밀려왔다. 업체들은 영세해 자본력 부족→연구개발 투자 정체→기술개발 한계의 악순환이 이어졌다. 지금도 엘로드 브랜드를 보유한 코오롱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중견기업이 없다. 아디다스-테일러메이드, 나이키, 캘러웨이, 미즈노, 스미토모고무(던롭스릭슨), 야마하 등 굵직한 해외 업체들이 기술 및 디자인 개발, 시장조사, 소재 연구 등에 연간 수백억~수천억원의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또 세계 최정상급 선수와 연예인을 활용한 '마케팅 폭격'은 꿈도 못 꿀 일이다. 중국 내 생산과 인터넷 판매 등으로 가격을 낮추면서 가격경쟁력이라는 기댈 언덕마저 사라졌다. ◇맹목적 외산 선호, 유출되는 외화=한국은 미국ㆍ일본에 이어 세계 3위의 골프시장으로 꼽힌다. 최근 골프인구가 급증한 데도 원인이 있지만 해외 브랜드에 쉽게 신뢰를 보내는 국내 소비자들의 성향도 한몫하고 있다. 국내 업체의 부진과 이에 따라 심화된 소비자의 외산 선호 탓이다. 국내 시장은 해외 업체들에는 군침 도는 공략 타깃일 수밖에 없다. 한국 전용 모델을 내놓는가 하면 신모델 양산에 앞서 테스트베드로 활용하는 사례가 생겨날 정도다. 외화가 줄줄 새어 나가는 것이다. 일본 재무성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9월까지 일본의 골프채 수출액 231억7,138만엔 가운데 한국이 차지한 비율은 무려 70%(161억786만엔)에 달했다. ◇국산 브랜드의 재발견=최근 국산 용품의 성능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는 것은 희소식이다. 허미정(20)의 미국 LPGA투어 세이프웨이클래식 우승은 기술축적의 성과로 평가된다. 허미정은 20년간 국산 용품 개발에 매달려온 코오롱엘로드 클럽으로 미국 본토에서 우승한 첫 번째 선수가 됐다. 골프볼 업체 볼빅도 성능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진행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와 계약을 맺고 대회에서 자사 볼을 사용하면 50만원, 이 볼을 사용해 우승하면 1억원을 주기로 한 것. 샤프트 및 맞춤클럽 전문 브랜드 MFS는 최경주, US오픈 우승자 루카스 글로버(미국) 등 때문에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먼저 유명해진 케이스다. 이 같은 노력은 당장의 점유율 제고 기대는 차치하더라도 우리 브랜드의 품질을 재발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뿌리 깊이 자리잡은 외산 선호 의식을 바꾸는 첫 단추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 인식전환 시급=지난해 대한골프협회가 조사, 발표한 '2007 한국골프지표'에 따르면 골프 참여 인구는 인구 대비 환산으로 251만여명, 골프를 배울 의향이 있는 잠재 인구는 1,006만여명이다. 또 골프 참여 인구의 1인당 월평균 골프활동 지출비용은 43만2,159원이었다. 참여 인구의 연간 총 지출액만도 13조원을 웃돌고 잠재 인구까지 포함하면 천문학적인 금액이 나온다. 엄청난 산업 분야다. 이 와중에 국내 골프 관련업계가 토로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정부의 골프에 대한 '이중적 시각'이다. 선수들이 해외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표창을 하고 칭찬하면서 정작 산업과 관련해서는 중과세를 부여하는 것은 문제다. 또 외산과 국산 브랜드의 제품성능 비교에 대한 산하 기관의 신뢰할 만한 테스트 자료 하나도 구하기가 힘든 실정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산업적 시각을 가지고 접근해야 '골프 한류'에 발맞춰 진정한 '골프 강국'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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