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그리스 사태로 지난 1940년대 내전 이후 아물어가던 그리스인들의 '좌우분열' 및 '빈부갈등'이 다시 악화하고 있다. 더 이상의 긴축을 감내하느니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Grexit)가 낫다는 서민층과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잔류로 더 많은 이익을 향유하려는 부유층의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와 대외채권단, 유로존 정상들은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해가며 그리스 사태 해결을 위한 최종 담판에 들어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1일(현지시간) 그리스 수도인 아테네 북부 지역의 세미라미스호텔에서 최근 열린 부유층의 생일 파티 모습을 전하며 "저명한 사업가와 정치인들, 학자, 사회 유명인사들이 모여 현 사태를 우려하며 정부를 맹비난하는 가운데 유로존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구원자가 돼줄 것이라는 낙관적 견해를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은행원은 "무능한 정부가 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며 "(급진좌파 성향의) 현 정부는 공산주의자들로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지금껏 유럽의 단일화폐권 아래 자녀들의 해외유학이나 유럽 부동산 투자, 사치품 구입 등을 자유로이 해온 그리스 부유층에게 유로존 없는 삶은 상상하기 어렵다.
반면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 체제의 주요 지지세력인 빈곤층은 유로존을 사회적 불평등이나 공공지출의 과도한 삭감 등과 동일시하기에 이르렀고 이 때문에 "더 큰 긴축을 감내하느니 차라리 (그렉시트라는) 미지의 영역을 경험하는 게 낫다고 여긴다"고 FT는 전했다. 정치 리스크를 전문으로 하는 한 컨설턴트는 "쓸 돈이 없고 계좌도 텅 빈 노동계층은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며 "그들이 현 정부를 지지하는 이유는 이것이며 여론조사 결과가 보여주듯 이들 가운데 절반은 분명히 그렉시트에 찬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 및 그렉시트 가능성과 관련한 이 양분된 견해는 사회 갈등 및 분열을 더욱 부채질하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아테네 중심가에서는 지난주 각각 현 집권 시리자당을 지지하는 측과 이에 대항하는 반정부시위가 이틀간 열리기도 했다. FT는 "(1944년 촉발된) 내전으로 그리스 사회는 좌우의 깊은 분열을 경험했다"며 "최근의 경제적 곤궁이 오랜 세대에 걸쳐 치유돼온 이 상처를 다시 헤집어놓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그리스 사태의 중대한 분수령이 될 이번주를 맞아 유럽 주요 지도자들은 분 단위의 스케줄을 소화하며 접점 찾기에 나섰다. 특히 22일 긴급 정상회의를 앞두고 그리스 정부가 새 협상안을 전격 제시하면서 사태해결에 실낱같은 희망이 비치기 시작했다고 영국 가디언지가 전했다. △연금 일부 삭감 및 조기퇴직 수당 삭감 △중산층 및 특정 기업의 추가 과세 △국내총생산(GDP) 1% 규모 재정긴축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진 새 협상안을 두고 치프라스 총리는 21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 등과 연달아 전화통화를 시도해 의견을 교환했다. 국제통화기금(IMF)·유럽중앙은행(ECB)·EU 등 채권단도 치프라스 총리의 전향적 태도 변화를 전제로 △구제금융 6개월 추가 연장 △180억유로(약 22조5,000억원) 상당의 긴급 구제자금 공급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가디언은 보도했다.
22일에도 최고위급 당국자들의 잇단 접촉이 이어지는 등 쉴 새 없는 일정이 계속됐다. 치프라스 총리는 이날 오후 열린 긴급 EU 정상회의에 앞서 오전 도널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을 만난 데 이어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 등 채권단 대표들과 연쇄 회동했다. 그리스 은행에 대한 추가 유동성 지원을 논의하기 위한 ECB 회의, 유로존 재무장관회의 등도 같은 날 열리는 등 그리스 사태 해법 논의가 하루 종일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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