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하면 '반값 아파트=로또' 그칠수도<br>예산·택지도 적어…현실화 회의적
정치권에서 촉발된 ‘반값 아파트’가 올 하반기는 물론, 내년 대선과 맞물려 뜨거운 이슈로 급부상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반값 아파트’를 당론으로 채택한 데 이어 청와대를 중심으로 여권에서도 ‘반값 아파트’에 대한 논의가 물밑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실무 부서인 재정경제부의 임영록 차관보도 “조만간 ‘반값 아파트’에 대해 결론을 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만약 반값 아파트를 서울ㆍ수도권 등에 충분히 공급만 할 수 있다면 치솟는 집값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전제조건은 ‘충분한 물량’과 ‘좋은 위치’다. 시범 케이스로 몇 군데 공급에 그친다면 ‘반값 아파트=로또’ 이상의 의미는 갖기 어렵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 소장은 “관건은 얼마나 많은 양을 서울ㆍ수도권에 공급할 수 있느냐”라며 “사유지가 95%에 달하는 우리나라에서 서울ㆍ수도권에 대량 공급이 가능하겠냐는 점에서는 회의적이다”고 말했다.
◇국민임대주택 예산도 못 짜는 현실=기획예산처의 ‘중기(2006~2010년) 재정운용계획’을 보면 4년간 구체적인 예산이 잡히지 않는 분야가 한 곳이 있다. 바로 국민임대주택 건설 분야다. 택지ㆍ재원 부족이라는 고질적 문제 때문에 내년에 수요조사를 실시, 건설기간과 공급물량을 재검토하겠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주택 관련 예산을 짜내기도 버겁다. 내년 순수 주택 관련 예산은 총 12조9,863억원. 올해(13조5,459억원)보다 4,404억이 증액되는 데 그쳤다. 오는 2008년 14조832억원, 2009년 14조1,084억원, 2010년 14조2,016억원 등 연평균 1.2% 증가폭이다. 국민임대주택 100만가구 건설, 공공임대주택 50만가구 건설 등 서민 주거안정을 위한 원대한 계획은 세웠지만 그것조차도 쉽지 않은 게 주택정책의 현주소다.
기획예산처의 한 관계자는 “사회간접시설(SOC) 분야 등 나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닌 상황에서 주택 부문에서 지금보다 재정을 더 확대할 여력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주공ㆍ토공, 현재도 빚만 수 십조원=반값 아파트 계획이 정책이 될 경우 사업 주체는 주택공사와 토지공사가 맡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 2005년 기준으로 택지개발사업의 양대 기관인 주공과 토공의 총부채액이 무려 34조2,000억원이다. 누가 봐도 재정여력은 최악이다.
주공ㆍ토공의 부채가 늘게 될 가장 큰 원인은 혁신도시 등 각종 개발사업에 대한 토지보상비 지급 때문이다
. 참여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9곳의 혁신도시에만 토지 보상비가 앞으로 4조3,000억원이나 지출돼야 한다. 이는 지난해 공공기관이 전국에서 집행한 전체 보상비 15조원의 30%에 육박한다. 그렇다고 부채의 증가추세가 줄어들 기미는 없다. 토지공사는 2005년 부채가 12조3,868억원으로 2004년부터 1조4,512억원가량 증가했다. 2005년 말 현재 무려 21조9,000억원의 부채를 갖고 있는 주택공사는 ▦2006년 36조9,000억원 ▦2011년에는 51조7,000억원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게 주공 측 설명이다. 일각에서 이들 두 기관을 ‘언제 떠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비유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답답한 정부, “11ㆍ15대책만으로 버겁다.”=이 같은 현실을 알고 있는 정부의 반응은 차갑다. 정치권에서 추진한다고 하니 대놓고 반대할 수는 없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솔직히 11ㆍ15대책에 대한 후속책을 마련하는 것만으로도 재정적으로 버거운 상황에서 정치권에서 검증안된 아이디어 수준의 정책을 마구 내놓아 너무 부담된다”고 말했다.
11ㆍ15대책에서도 정부는 분양가 인하 방안을 내놓았다. 광역기반시설 부담금을 정부가 부담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택지개발지구에서 25%의 분양가 인하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택지의 최고가낙찰가제도도 폐지하기로 했다. 정부로서는 그만큼 재정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판교 신도시에 들어가는 광역기반시설(광역교통시설 구축 등) 비용이 1조8,837억원. 이중 30% 정도만 정부가 부담해도 그 금액은 5,650억원에 달한다. 비슷한 규모의 광교ㆍ송파ㆍ양주ㆍ파주ㆍ검단ㆍ김포(205만~497만평) 등의 광역기반시설 부담금 30%씩 부담할 경우 신도시당 5,600억, 6곳에만 모두 3조원의 재정 부담이 생기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반값 아파트까지 추진할 경우 국가의 재정은 걷잡을 수 없는 적자구조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물론 마땅한 택지도 없다.
김현아 건설산업연구원 박사는 “국공유지가 많지 않은 우리 현실에서 정부가 땅을 사들여 지을 수 있는 아파트 가구 수가 얼마나 되겠느냐”며 “재정적 부담은 차치하고라도 대량 공급이 되지 않는 한 반값 아파트는 의미가 없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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