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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5월22일] 골라 먹는 '아륀지'
입력2009-05-21 14:00:24
수정
2009.05.21 14: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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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5월22일] 골라 먹는 '아륀지'
우현석 hnskwoo@sed.co.kr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과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이 파격적인 사교육비 절감대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기사가 5월21일자 조간에 실렸다.
대책에는 고교내신 절대평가, 자율형사립고 선(先)지원 후(後)추첨 등 파격적인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런 저런 대책들이 사교육비 절감으로 이어질 것 같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사안을 단순화시켜 보자. 중고생들의 사교육비를 부풀리는 양대 축은 뭐니뭐니해도 영어와 수학이다. 특히 영어는 해외연수니 회화 위주니 해서 한국 학부모들의 등골을 휘게 하는 주범이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가 ‘한국이 지난해 외국 유학이나 연수 경비로 지출한 돈이 23억달러에 달한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덧붙여 이 액수는 지난 2007년에 비해 5.8% 감소한 것이고 이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최대 낙폭이라고 부연했다. 최근까지 하늘을 찔렀던 달러 가치 탓에 많은 학부모ㆍ학생들이 유학ㆍ연수를 포기한 덕분이다.
지출한 달러 감소 폭이 급락했다기에 3년 전 자료를 찾아봤다. 2005년 우리나라가 국내 외국환 은행을 통해 지급한 유학ㆍ연수 경비는 33억8,000만달러. 현재 환율로 환산하면 4조원이 넘는 액수다. 유학알선업체 등 관련 업계에 따르면 2005년 해외로 나간 학생의 수는 대략 35만명. 하지만 유학ㆍ연수 관련 업체들은 관광비자를 받아 해외로 나가 영어공부를 하는 학생들의 숫자를 합치면 영어습득을 위해 유출되는 외화의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추산한다.
이렇게 유학ㆍ연수로 돈을 쏟아부으며 영어공부를 했지만 한국 학생들의 지난해 iBT 토플시험 성적은 120점 만점에 평균 78점. 세계 평균치 79점에 못 미친다. 돈 처들여 과외ㆍ학원에 연수까지 다녀와서 중간도 못한 셈이니 엄청난 국력 소모가 아닐 수 없다.
영어몰입에 따른 국력소모는 이뿐 아니다.
대학생들의 경우 영어때문에 전공공부를 소홀히 하는 것도 문제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4년 내내 전공보다 영어공부를 더 열심히 한다. 기업들이 신입사원 선발을 위한 토플 점수 등을 요구하니 어쩔 도리가 없다. 한국 대학생들의 전공실력이 외국 대학생들보다 못한 것은 당연지사다.
그렇다면 회사에 취직한 이들이 10년 넘게 공부한 영어를 제대로 써먹고는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한 대기업 직원은 “10년 넘도록 영어공부하고 연수까지 다녀와서 취직을 해봤자 해외영업 등 특정 부서가 아니면 영어를 활용할 기회가 없다. ‘그렇게 엄청난 비용과 노력을 쏟아가며 영어공부를 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일까’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영어가 교육의 목적인지, 아니면 사회활동을 위한 수단인지를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영어를 구사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은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영어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광기(狂氣)를 보고 있노라면 영어가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궁극의 목적으로 변질됐음이 분명하다.
정권 초기 정부는 영어몰입교육을 외쳤고 이경숙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은 ‘오렌지가 아니라 아륀지’라고 장단을 맞췄다. 하지만 그 같은 소동은 영미권 젊은이들의 고용에만 기여를 했을 뿐이다.
이 같은 야단법석을 보노라면 ‘영어때문에 이렇게 나라가 들썩거릴 바에야 차라리 영어를 선택과목으로 전환하는 것은 어떨까’하는 생각도 든다. 영어를 중국어ㆍ일본어ㆍ프랑스어ㆍ독일어 등과 같은 선택 외국어 중 하나로 전환한다면 이 같은 북새통은 분명 완화될 것이다. 혹자는 이 같은 생각에 대해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영어는 반세기 이상 우리 생활 속으로 침윤했던 외국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세상은 변하고 있다. 국경이 맞닿은 중국ㆍ러시아와의 교역량은 해마다 늘고 자원외교를 위해 접근해야 할 아프리카ㆍ중남미 국가들 중 상당수는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정부까지 나서 모든 국민들에게 영어를 강요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하지 말라고 해도 영어가 필요하면 수요는 생긴다. 그게 자본주의의 생리요 원칙이다.
오랫동안 백성들에게 ‘아륀쥐’만 먹여왔다고 해서 그 타성에 목을 걸 필요는 없다. 급변하고 있는 세계 무대로 진출하려면 국민들에게 사과도 먹이고, 바나나도 먹이고, 수박도 먹여야 한다. 골라 먹는 아륀지가 맛도 좋고 몸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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