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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안경을 들고 창 밖을 몰래 훔쳐보는 사람, 짙은 화장을 한 여장 남자, 붉은 불빛 아래 홀로 앉아 정찬을 먹는 사내, 엄마 혹은 아빠가 두고 나간 듯 혼자 노는 어린아이, 감정없는 기계적 섹스에 몰두한 남녀와 정반대로 욕망의 도를 넘어선 기괴한 변태 행위들, 그리고 살인과 자살의 현장까지. 유리창 너머로 66개의 방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호텔을 통째 촬영한 김인숙(41)의 작품 '토요일 밤(Saturday Night)'이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다. 그러나 작가 김인숙(41)은 "외롭고 쓸쓸한 현대인의 초상"이라고 답한다. 보통의 이상적인 토요일 밤은 가족ㆍ연인과 함께하는 화목한 저녁시간이지만 현실이 꼭 그렇지는 않다. "우연히 호텔방에 외롭게 앉아있는 항공 승무원을 본 것이 모티브가 됐어요. 뒤셀도르프의 한 호텔을 빌려 촬영했으나 각 방에서 일어난 행위들은 영화를 찍듯 연출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믿기 어려운, 절망적인 장면들은 독일의 신문에서 수년간 수집한 현실 속 실제 사건입니다. 화려하지만 외로운 우리 시대의 현실이죠." 한국인 사진작가 가운데 해외에서 가장 강렬하고도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는 김인숙의 국내 첫 개인전이 서소문동 대한항공 일우스페이스에서 내년 1월 9일까지 열린다. 독일을 중심으로 외국에서만 활동해 온 탓에 국내에서는 간헐적으로 작품만 소개됐을 뿐 그의 이름조차 낯설고 이처럼 대규모 전시의 기회도 드물었다. 제 1회 일우사진상 수상자전 형식으로 어렵게 전시가 마련됐다. 작가의 유명세는 2002년 지나가는 젊은 여성의 뒷모습을 촬영한 '이름없는 얼굴(Face with No Name)'시리즈에서 시작됐다.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벌거벗은 여성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식사하는 장면의 '저녁식사(The Dinner)'나 금빛 대좌 위 나체 여성을 두고 수십 명의 양복 입은 남성 입찰자들이 지켜보고 있는 '경매(The auction)' 등은 파격적인 이미지로 김인숙의 이름을 세계에 알렸고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심리적 불편함을 자아내는 일련의 작품들은 남성의 응시가 여성을 욕망의 대상으로 바꿔놓는 것, 젊은 여성과 그 아름다움이 상품화되는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 왜 이렇게 자극적인 주제만을 택하느냐는 물음에 작가는 "믿고 싶지 않겠지만 실제 우리 생활에 존재하는 모습들"이라며 간단하고도 야무지게 답한다. 여성의 육체를 비롯해 투명성이 부각된 유리건물 또한 그의 작품세계에서 중요하다. 현대인은 사생활 보장과 안전을 원하지만 유리 건물은 철저한 통제와 감시 하에 있으면서도 밖에서 내부가 다 들여다 보인다는 역설적 이중성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사진을 시(詩)라고 한다면 나는 '서사시'를 쓰고 싶다"는 작가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를 이야기 하는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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